[취재여록] 예고된 '이라크 참사'

"이라크에 있는 우리 교민들과 공관원들의 안전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교민들의 안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근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이라크 사태 관련 브리핑에서 했던 말이다. 그래도 기자들은 다시 한번 교민의 안전문제를 질문했다.이에 대해 외교부는 짜증스런 반응까지 보였다. 기자들이 '이라크 교민'의 안전에 대해 물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들이 미군뿐 아니라 파병될 다국적군과 파병국가 민간인들도 테러 목표로 삼겠다고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현지에서는 라마단 단식월이 끝나는 시점에 저항세력이 한국인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실제로 이라크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징후는 계속 있어 왔다. 지난달 21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국회 이라크 조사단이 투숙 중이던 팔레스타인호텔이 로켓공격을 받았다. 이 호텔에는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이 입주하고 있었다. 또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의 서희·제마부대 주둔지 부근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해 이탈리아인 19명을 포함한 33명이 사망했다. 이에 앞서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 바그다드 대사관 앞에서 이라크인들에게 차량으로 납치당해 '이라크를 떠나라'는 협박을 받은 뒤 풀려났다. 지난 8월에는 KOTRA 바그다드 무역관이 피격당하고,대우 바그다드 사무소에 '이라크를 떠나라'는 협박편지가 배달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외교부는 태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라크 현지 상황이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종합적인 판단이어서 아직 현지 주재원이나 교민에 대한 철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며 "대사관 직원 철수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입이 열개라도 '예고된 참사'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권순철 정치부 기자 i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