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보이는 손, 달라는 손

미국프로농구(NBA)는 지난 99년께 TV 시청률이 20% 이상 추락하는 사태를 맞았다. 경영난에 빠진 구단들이 선수 연봉상한제를 채택하자 선수들이 반발해 연대 파업에 나섰고 이에 구단이 다시 직장 폐쇄로 맞서는 등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경영연구가들이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로 꼽는 대표적 사례다. 실패 이전의 시스템은 이랬다. 농구팬들은 특정 팀이 아니라 마이클 조던 같은 스타들 때문에 농구를 본다. 스타가 있어야 구단은 돈을 번다. 이전에는 이런 스타들이 대학에서 4년을 뛰고 프로팀에 입단했다. 그래서 프로가 될 때쯤에는 이미 수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스타가 입단했다는 사실 하나로 명문팀이 탄생했다. 이 시스템은 간단히 무너졌다. 욕심 많은 구단주와 돈 맛을 본 어린 선수들,그리고 양쪽을 오가며 돈을 챙긴 에이전트들이 '열심히' 뛴 결과다. 스타를 선점하려는 구단주들은 기대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거액을 주며 스카우트했다. 어린 선수들은 대학 4년이란 세월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한 고액수표에 이성을 잃었다. 팬들은 그러나 냉정했다. 자기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신인들의 잠재력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구단주들은 어린 선수들을 알리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고액연봉자는 많으나 스타가 없는 농구팀에 팬들은 실망했고 미국 프로농구의 인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소위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을 뜻한다. NBA의 사례에서 구단주,선수,그리고 에이전트들은 모두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했다. 그 결과는 그러나 조화가 아니라 프로농구 시장의 위축,상품가치의 추락으로 나타났다. 경제 주체들이 자기 이익에 충실하면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이처럼 왜곡된 결과를 낳는 일도 잦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패한 만큼 논리적으로 당연히 '보이는 손'이 필요해진다. 문제가 이쯤에서 생긴다. 정부나 정책 당국자들이 이 보이는 손을 '정책'이나 '규제'라고 생각하고 개입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럴드 뎀세츠는 이같은 태도를 '니르바나(nirvana) 접근방식'이라고 불렀다. 니르바나는 범어로 열반(涅槃)이라는 뜻."경제 현실을,결코 현실적 대안일 수 없는 순수 이론적 상황인 완전경쟁모형과 비교해 양자가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시장실패'라고 지적하며 정부개입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다. NBA의 실패를 자세히 보자.이건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NBA라는 협회가 경영을 잘 못한 탓이다. 중앙집권적인 조정 기능을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패한 만큼 보이는 손이 필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이어야 옳다. 대선자금 수사정국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이전의 경험으로 볼 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대기업그룹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들끓고 대기업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명분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이건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도 '보이는 손'이 나와야 할 상황도 아니다. '달라는 손' '내놓으라는 손'이 일으킨 후진국형 정치·경제 사건일 뿐이다. 하필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는 시점에서 매일 같이 계속되는 검은 뉴스에 신물이 나서 하는 얘기다. 전문위원 겸 한경STYLE 편집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