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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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톱밥난로가 석유난로로 바뀌었을뿐,시골 기차역의 정경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나무의자 덩그러니 놓인 대합실,영화 '편지'에 나오는 개찰구 옆 화분대,철따라 피는 개나리 맨드라미 채송화 잠자리꽃,상추며 쑥갓이 자라는 채마밭,한겨울 선로에 내리는 대로 고스란히 쌓이는 눈까지.
서울역은 물론 이런 자그마한 시골역과는 다르다.
서울역이 처음 생긴 건 1900년 7월.한강철교가 준공되면서 노량진과 서대문 사이에 문을 열었다.
25년 지하1층 지상2층짜리 서양식 역사(驛舍)가 세워진 이래 서울의 상징이자 일본과 한국 중국대륙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78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슬픔,설렘과 두려움을 안은채 오간 서울역이 최근 옛역사 남쪽에 건립된 새 역사로 이전한데 이어,11일엔 역사 안 패션전문점 '갤러리아 콩코스(CONCOS)'를 오픈한다는 소식이다.
새 역사는 내년 4월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한화그룹이 지하2층 지상5층 규모로 지은 것으로 앞쪽은 지하철1호선 서울역 1번 출입구,뒤쪽은 소화병원 앞으로 이어진다.
1층 플랫폼 위층에 대합실 백화점 식당 등을 배치한 필로티 구조로 멀리서 보면 윗면이 활 모양으로 돼 있고,인천공항처럼 유리로 마감해 밝고 환하다.
대합실에서 백화점이 곧장 연결되고 대형 패스트푸드점 등이 늘어나 편리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옛건물 식당에서 보이던 철로는 안보이고 낡은 기차역이 주는 은근함도 없다.
게다가 이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오랜만에 찾은 사람을 허둥지둥 당황하게 만든다.
시대가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
고속철이 개통되고 2008년 인천공항까지 철도가 연결되면 서울역은 유럽으로 가는 세계의 관문이 될지 모른다.
그러자면 지금부터라도 공공시설로 부족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보완해야 한다.
대형할인점으로 바뀐다는 옛역사(사적 284호)의 보존에 힘써야 함도 물론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