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400만-이제는 신용이다] 제2부 : (7) 주위에 털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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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가정의 여대생이던 박 모씨(23)는 재작년 6월 소위 '명품' 몇 점을 신용카드로 샀다.
아르바이트로 하던 번역 원고료가 나오면 카드 대금을 결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출판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원고료를 못받게 됐다.
박씨는 우선 다른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카드대금을 막았다.
이렇게 시작된 박씨의 카드 빚은 당초 4백만원에서 1년여 만에 1천70만원으로 불어났고 결국 지난해 9월 신용불량자로 등록되고 말았다.
박씨는 그 후 6개월이 지나서야 부모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얻어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박씨의 사례처럼 신용불량자 중에는 자신의 사정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는게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원들의 전언이다.
◆ 신용불량자 절반이 가족한테 고백 못한 것 후회
한국경제신문이 신용회복위원회와 공동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신용불량 위기 때 처음 취한 조치는 무엇이었나'란 질문에 대해 설문에 응한 총 1백39명의 신용불량자중 87.7%(1백22명)가 '신용카드 등으로 돌려막기 했다'고 답변했다.
'가족의 도움을 구했다'(5%)는 대답은 소수였다.
'처음 연체위기에 놓였을 때 가족의 도움을 구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엔 절반 가량(48.9%)이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남성 신용불량자의 60%는 가족에게 미리 털어놓지 못한 점을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가족들이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도 15.1%(21명)나 됐다.
이 중 19명(90.5%)은 20∼30대의 젊은 층이었다.
가족이 알게 된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의 59.3%(70명)가 '신용불량자 등록직후'라고 답했으며, 17%(20명)는 '등록 후 3개월 이후'라고 말했다.
◆ 가능한 빨리 주변의 도움 구하라
신용관리 전문가들은 자신의 빚을 끝까지 숨기면서 시간만 버는 것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다한 채무를 지게 됐다면 우선 주변의 도움을 구해보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가능한 빨리 털어놔야 그나마 빚 규모를 줄일 수 있다.
특히 별 소득 없이 소액을 연체해 신용불량 위기에 놓인 젊은이들의 경우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가족과 상의해야 장기 신용불량의 고리를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
YMCA 시민사회운동사무국의 원창수 팀장은 "통계상 20∼30대 젊은 신용불량자가 많다는 것은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젊은이들은 신용불량 위기에 놓였을 때 가족과 먼저 상의해야 빚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가족 도움 있으면 개인워크아웃도 신청가능
일정한 소득이 없는 신용불량자도 가족 등 주변의 도움을 구하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다.
실제로 무직자들의 개인워크아웃 신청건수는 매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무소득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지난 8월까지 1백11명이었지만 △9월 2백24명 △10월 6백3명 △11월 7백8명(누계 기준) 등으로 느는 추세다.
주변의 도움을 얻어 개인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하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인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한 12명 가운데 11명이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워크아웃 조기졸업자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20∼30대의 젊은 층이었으며 개인워크아웃 적용당시 평균 6.6%씩 원리금 감면혜택을 받았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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