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부안 실패 다시는 되풀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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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핵폐기장 건설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총체적 행정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부안군이 유치계획을 발표한 후 6개월에 걸쳐 벌어진 폭력시위와 등교거부 등 심각한 상처와 후유증만 남긴채 중요한 국책사업이 또다시 표류하게 돼 씁쓸하기 짝이 없다.
부안 문제와 관련한 정부 대응은 한마디로 혼선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리더십 부재로 부처마다 다른 의견을 중구난방식으로 내놓는가 하면 즉흥적 대응을 일삼아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때는 시위를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갑자기 힘으로 밀어붙여 극한 대립 상황을 초래하는가 하면 부처간 협의도 없이 '현금보상'을 내걸었다 철회해 불신만 키우기도 했다.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연내 실시한다,연내는 안된다,전북도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등 온갖 얘기가 나온 끝에 드디어 합의를 이루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사실상의 중도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정부는 그래도 주민투표는 실시할 것이라고 하지만 정책에 동조해 주민 설득에 나선 유치 찬성 단체들만 우스운 꼴이 됐다.
지난 17년간 영덕 안면도 영일 울진 굴업도 등의 후보지 선정이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던 경험에서 아무런 학습효과도 얻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심할 뿐이다.
정부는 부안군에 우선권을 주면서 다른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유치신청을 받아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지선정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반대여론이 거센 부안주민투표에서 '찬성'의견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고 부안사태 추이를 지켜본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선뜻 신청서를 낼 가능성도 높다고 보기 어렵다.
한두 곳의 자치단체가 유치 의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정부측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 신청으로 이어질 지는 매우 불투명한 셈이다.
게다가 국가차원의 중요정책이 지역 주민 투표에 의해 좌우되는 선례가 남게 된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번의 실패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혜를 짜내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리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일이다.
핵폐기장 후보지로 적절한 지역의 명단을 공개하고 초기단계부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로만 안전하다고 떠들게 아니라 구체적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환경단체 등도 핵폐기장 건립은 국가적 대사임을 감안해 무조건적 반대나 과도한 개입은 자제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