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아리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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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눈물고개/울고 넘던 이별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눈 못뜨고 헤매일 때"로 시작되는 '단장의 미아리고개'만큼 우리 민중의 한과 슬픔을 담은 대중가요도 없을 성 싶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곡조에 가사를 얹어 부르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미어지면서 촉촉히 젖어든다.
이 노래는 6·25전쟁 와중에 지어졌지만 노랫말처럼 미아리고개는 그 훨씬 이전부터 운명적으로 기구했던 것 같다.
미아리고개의 원래 이름인 '되노미고개'는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이 이 고개를 넘어 침입했다가 물러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의 망우리 못지 않은 공동묘지였다.
총독부가 강제로 묘지를 만들었는데 식민지시절을 어렵게 살다 간 우리 조상들의 원혼이 묻힌 눈물고개였던 셈이다.
50년대 후반 공동묘지가 경기도 광주로 옮겨간 뒤에는 이 곳에 점(占)집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신들린 점쟁이들은 저마다 울긋불긋한 깃발을 내걸고 삶에 지쳐 찾아온 사람들을 맞아 점을 치고 푸닥거리를 했으니 이 또한 운명의 고개라고 할 만하다.
아직도 점술인들의 간판이 즐비한 미아리고개 일대는 도심에서 가까운 곳인데도 개발이 늦어 '달동네''달맞이고개'라는 별명을 떼지 못하고 있다.
미아리 홍등가는 몇차례 당국의 대대적인 정비가 있었지만 여전히 취객들의 발목을 붙잡는 곳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오욕을 간직하고 있는 미아리고개에 환한 불이 켜졌다.
서울시가 고개 정상에 있는 구름다리와 인근 성곽,정자 등을 새롭게 단장해 엊그제 점등식을 가진 것이다.
조명의 컨셉은 암울한 '시련의 역사'대신 도약하는 '희망찬 미래'에 맞췄다고 한다.
때마침 미아리 지역은 균형발전촉지지구로 지정돼 재건축·재개발 바람이 게세게 일고 있어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소식이다.
북한군과 중공군이 이 고개를 넘고 수많은 피난민이 생이별을 했던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눈물과 한숨이 뒤범벅이 된 한많은 미아리고개가 희망을 안고 넘는 고개로 변모될 것을 생각하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