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전성시대] (1) 오피니언 리더 36명 긴급설문

제일은행에 이어 최근 외환은행과 현투증권을 인수하는 등 외국 자본의 잇단 국내 간판 금융회사 '접수'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 금융계 기업 학계 시민단체 등의 대표들은 적절한 대책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이 각계 대표 36명을 대상으로 '외국자본의 한국기업 인수, 바람직한가'를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론은 "외환위기 직후에는 부실 기업의 해외 매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제는 국내외 자본의 역차별 폐지 등 보완조치가 시급하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외국자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산업자본을 포함한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는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특히 민영화가 예정된 우리금융지주회사를 국내 자본에 넘겨야 한다는 데는 80% 이상이 동의, 외국자본의 독주현상에 대한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 국내자본 역차별 심각 부실기업 매각시 국내자본을 역차별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80.6%에 달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매각할 때마다 국내외 자본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매각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한국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은 "외환보유액이 1천억달러를 돌파한 시점에서도 계속 국내 자본의 손발을 묶어놓고 외국 자본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외국자본으로 넘어갈 경우 핵심산업 기술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거나 최소한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88.5%)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 더이상 은행 해외매각은 안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기업인과 금융인 학자 공무원 등 대다수가 "우리금융지주회사를 국내 자본에 매각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은 최근의 외자유치 지상주의(至上主義)에 대한 반발 기류가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은행 민영화를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한은 포함 8명) 중에서도 7명이 '국내 우선 매각'을 주장, 과거의 은행 해외매각이 긍정적인 성과보다 부작용을 더 초래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전체 응답자들은 해외매각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대부분 '제일은행'을 꼽아 이같은 기류를 반영했다.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은행은 국내 29대 계열기업중 14개 기업의 주거래은행을 맡고 있다"며 "기업금융 전담은행으로서 역할이 막중하므로 가급적 국내자본에 매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 자본의 은행 인수 허용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김대유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취득 자체는 허용하되 투명한 은행경영이 이뤄지도록 감시장치를 강화하고 사후 제재를 엄격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는 "외국자본 비중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 불안과 공정거래 저해 가능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허용조치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권성철 한국투신운용 사장은 "산업과 금융의 분리원칙은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고, 익명을 요구한 연구소 관계자도 "금융산업내 경쟁과 시장규율이 미흡한 상태에서 산업자본에 은행 인수를 허용하면 시스템 리스크 및 이해상충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외자유치 자체는 반대 안해 1997년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부실기업 매각과 외자유치에 대해 '불가피했다'(91.7%)는 평가가 많았던 것은 외국자본의 국내 진입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국 자본의 한국 기업 인수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3분의2에 육박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