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申年…역사속 원숭이 이야기] 장수ㆍ자손번창ㆍ부귀 상징

갑신년(甲申年)을 상징하는 동물인 원숭이는 동물들 가운데 사람과 가장 많이 닮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앞뒤 발가락이 길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뒷다리에 중심을 싣고 앉을 수 있어 앞발이 자유롭다. 네발로 걷지만 직립도 가능해 다른 동물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손재간을 갖고 있다.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발달해 지능이 높고 음성과 표정,몸짓 등 다양한 의사소통을 통해 집단생활을 한다. 이 때문에 동물계에서 가장 영리하고 재주가 많은 동물로 꼽힌다. 고대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에는 원숭이 군대의 영웅적인 지도자인 하누만이 마왕에게 애인을 빼앗긴 라마신을 도와준 선신(善神)으로 등장한다. 태국 스리랑카 등의 불교국가에서는 원숭이를 신성시하기도 하며 '서유기(西遊記)'의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도와 온갖 마귀를 물리치며 불경을 구해온 이래 원숭이에게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 풍습도 생겼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의 추녀를 받들고 있는 원숭이처럼 전통 건축물의 지붕에 다른 동물들과 함께 원숭이상을 세우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실제로 우리 민족이 원숭이를 접한 경우는 많지 않다. 무게 80g의 아기여우원숭이에서부터 2백㎏을 넘는 거구의 고릴라까지 2백여 종의 원숭이가 있지만 한반도는 원숭이의 자연서식지로는 적합하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도 원숭이는 오랫 동안 우리 문화에 등장해왔다. 원숭이 모습의 신라토우가 있는가 하면 원숭이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무기를 든 십이지상도 있다. 신라 성덕대왕의 십이지상에는 원숭이가 완벽하게 남아있고,통일신라 능지탑이나 원원사지탑 등의 불탑에서도 원숭이상을 볼 수 있다. 또 도장의 꼭지나 연적,주머니끈을 고정하는 장식물인 서체(緖締) 등을 원숭이 모습으로 빚어 구운 청자,청화백자,백자 등도 적지 않다. 고려때인 12세기 작품으로 새끼를 끌어안고 있는 원숭이를 표현한 '청자원숭이형연적'은 새끼에 대한 원숭이들의 남다른 정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마다가스카르 섬의 링테일 원숭이 집단에서는 새끼가 태어나면 너도나도 앞다퉈 새끼를 안아 핥아 준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원숭이는 바위·폭포·천도복숭아 등의 십장생과 함께 장수와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원숭이가 파계승의 위선적인 모습과 신 장수의 비행을 풍자하는 배우로 등장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원숭이를 달갑잖은 존재로 여긴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원숭이 하면 잔꾀나 간사스러움을 연상한다. 띠를 말할 때에도 '원숭이띠'라고 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한다. 잔나비란 원숭이의 옛말인 '납'에 '재빠르다'는 뜻의 '잰'이 접두사로 붙은 것. 이같은 원숭이 기피심리는 사람을 너무 많이 닮은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결과다. 속담이나 전래되는 이야기에서도 원숭이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예컨대 '원숭이의 지혜'는 미숙한 지혜를 갖고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이르고,'원숭이 잔치다'라는 속담은 먹을 것도 없이 부산하기만 함을 뜻한다. 주인이 '먹이를 아침에 3개,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자 소란을 피우던 원숭이들이 '그러면 아침에 4개,저녁에 3개 주겠다'고 하자 조용해졌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도 원숭이의 얕은 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십이지(十二支)에서 원숭이는 여덟번째 동물이다. 시각으로는 오후 3∼5시,방향은 서남서,달(月)로는 음력 7월을 가리킨다. 새해 첫 원숭이날은 '상신일(上申日)'이라 해서 삼가는 일이 많았다. 칼질을 하면 손을 베인다고 해서 삼갔으며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집밖에 나가는 것을 삼가는 지방도 있었다. 역술인들은 대체로 갑신년의 국운을 격변과 혼돈,역동성으로 점친다. 음양오행으로 따지면 갑(甲)은 나무(木)인데 비해 신(申)은 상극인 쇠(金)의 기운이어서 갈등이 많은 해라는 것. 60년 전 갑신년(1944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으며 1백20년 전 갑신년(1884년)에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것을 예로 든다. 실제로 올해에는 4월 총선과 관련해 정치권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 판 승부를 벼르고 있고 경기회복도 초미의 관심사다. 남북 및 북미관계와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화 등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구도가 복잡하다. 이럴 때 원숭이에 관한 우리 민족의 풍습과 인식이 던지는 메시지는 경청할 만 하다. 잔꾀를 부리지 말고 정도(正道)를 가라는 것,섣부른 흉내를 내거나 천부적인 재주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자기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격변의 시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변화의 시대에 원숭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