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자! 모두 다, 다~다시"..김정호 산업부 대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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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헷갈려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새해 첫날 신년사에서 '안정 속의 변화'를 화두로 제시했다.
경제활력 찾기와 민생 안정에 정부 정책의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수사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다음날 여지없이 무너졌다.
노 대통령은 장·차관들과의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를 조용히 넘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불쑥 던졌다.
어차피 상반기는 총선과 정치개혁으로 시끄러울 것이고 하반기에는 변화의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지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소식이다.
노 대통령은 뒤이어 "선거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안정'은 벌써부터 '어지러운 변화' 속으로 묻혀들 조짐이다.
신년사를 보고 '혹시나'했던 기업인들은 "그럼 그렇지"하며 일찌감치 체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통령이 선거 관련 발언을 했는데 재계가 왜 불안해 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재신임'과 '10분의 1 정계은퇴' 발언으로 경제가 불안해진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경제에 무슨 충격이…"라던 대통령이 아닌가.
정치권도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이 역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최대 경제 현안 중 하나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은 결국 해를 넘겼다.
통과 가능성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표심을 걱정한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TV 카메라를 의식하며 국회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몸으로 막아냈지만 국익을 생각해 이들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의원의 이름은 들은 바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지만 국회의원들에게는 국가경제보다 유권자의 '한 표'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점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검찰도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고려해 대선자금 관련 기업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곧 기업 총수와 관련 인사를 줄소환하겠다는 얘기이나,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가 길어질 수 있다는 엄포를 빠뜨리지 않았다.
기업인들이 낱낱이 고해성사하지 않는다면 큰 코 다칠 줄 알라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정치권을 겨냥하려면 기업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검찰의 수사망이 언제나 기업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새해 첫 발을 내디디는 기업인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시위를 떠난 각종 로드맵은 재계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정해진 과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다.
수많은 부작용을 목도하면서도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최종안을 확정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를 '시장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장질서를 바로 세우기보다 시장 자체를 개혁하려는 모양이다.
재계는 물론 노동계까지 반대하고 있는 노사개혁 로드맵도 3자인 정부만 신이 나서 밀어붙이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모를 정도다.
정치자금법에 한 쪽 당사자인 기업의 의견도 넣어 달라는 재계의 목소리는 허공을 떠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신년 화두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시 성장하고,다시 뛰고,다시 세우고,다시 시작하고,다시 판을 짜고….
재계의 마음이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고 기업이고 모두 좌초하고 말 것이라는 게 재계 신년사의 요지이니 말이다.
재계는 이렇게 외치고 싶을 뿐이다.
"자 모두 다,다~ 다시."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