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3) "노동축제 계속되다간 경제침몰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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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국민들도 산술적 평균주의가 시장경쟁 원리와 상치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구노력 없이 정부 시혜만으로 복지평준화를 시도한 어떤 웅장한 계획도 동구권 몰락에서 보듯이 실패하고 만다. 근로자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에서 해방된 축제를 너무나 오래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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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초에 점검해 보는 한국경제는 시동이 꺼진 자동차에 비유할 만하다.
점프 스타트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
지난 2003년 GDP(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은 2.6%로 추정돼 연초 예상치(5.3%)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였다.
이같은 성장 부진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지역의 사스 파동, 주5일 근무제 확대, 노동파업 등만 없었더라면, 그리고 DJ 정부의 반갑지 않은 유산인 가계대출 부실(신용불량자 양산)의 후유증이 없었다면 목표 성장률 달성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긋한 시각으로 본다면 2004년 새해의 경제전망은 밝은 낙관론으로 채색된다.
즉 골이 깊으면 산이 높듯이 지난해의 경기를 저점으로 반등하는 경제동향은 가파르게 고점(5∼6% 성장)을 향해 순항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현실은 이 같은 낙관적 경기순환론을 수용하기 어렵다.
그것은 세계 주요국 경제전망이 밝아 우리 수출경제에 미칠 플러스 영향을 상각하거나 상쇄할 만한 암초들이 산재하고 있어 국민경제 운용의 순항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새해에는 미국경제는 고성장을 누리고 중국경제는 그간 지속돼온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며, 일본경제도 모처럼 기지개를 펼 조짐이고, EU지역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수출 주도형 성장시대의 선순환적 파급효과가 되풀이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근래 한국의 수출 주종품이 전자제품, 자동차, 선박, 철강 등 소수 품목에 집중돼 있고 전후방 연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수 업체들이 해외 이전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는 간단한 점프 스타트 정도가 아니고 엔진을 들어내 고치는 오버홀 수리 작업이 필요한데 어디를 어떻게 손을 봐야 할 것인가?
경제성장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소투입, 기술혁신, 그리고 포괄적 의미의 '제도적 요인들'이다.
먼저 요소투입 문제부터 짚어보자.
첫째, 장기적으로 노동 공급 증대를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20여년 전과 같은 노동강도 역시 과거지사다.
민주화운동 이후 3D업종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노동의 조직화, 전투적 강성화는 가열일로를 걸어 왔다.
교육계와 노동시장의 수급 괴리로 지식정보사회에 걸맞은 전문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고,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들의 편향된 취업 선호로 3D업종은 합법ㆍ불법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조직화된 노동인구는 전체 노동시장의 13% 정도에 불과하고, 금속노련 등 강성노조는 그 중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위세에 정부가 굴종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대기업ㆍ공기업 부문을 상부, 그리고 이들과 하청관계에 있는 중소 영세기업 부문을 하부로 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즉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위쪽 노동이 열악한 아래쪽 노동을 착취하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에서 보듯이 정부의 묵인 아래 연중 수차례 파업이 자행됐고, 두산중공업ㆍ현대자동차 파업사태에서 보듯이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자본 투입의 증대는 생산설비의 확충뿐 아니라 기계에 묻어오는 기술 도입 때문에도 필요하다.
IMF 환란 이전에는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투자, 중복투자가 문제였다면, 근래에는 과소투자가 문제다.
왜 기업은 설비투자를 주저하는가?
그것은 강성노조와 정부 규제 때문이다.
과도한 임금 인상,경영 참여 등을 요구하는 노조와 까다로운 공장 설립 절차 등의 장애물 경기를 치르게 만드는 정부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화 이후 등장한 집권세력 중심부에는 반(反)기업 정서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선거 전에는 선거자금을 바쳐야 하고 선거 후에는 그것을 빌미로 법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
셋째, 근래 휴대폰ㆍ반도체ㆍ제철ㆍ컴퓨터 게임같이 극소수 부문에서 세계 일류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기초과학과 연구환경의 열세, 창조보다는 모방이 현재의 기술 수준이며, 경쟁국의 추월이 임박하고 있다.
그간 정부가 IT, BT, GT 등 T자 돌림의 슬로건을 걸었으나,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지리멸렬이다.
마지막으로 결국 포괄적 의미의 '제도적 요인들'에 눈을 돌려보자.
모든 경제, 특히 개발도상 경제에서 요소투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제도'다.
오늘날 한국경제의 재시동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해서 정부는 자유ㆍ민주ㆍ시장경제의 가치지향을 분명히 하고,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추진해야 한다.
그 중 가장 으뜸은 시장의 경기규칙, 법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1년간을 돌이켜 보면 무원칙ㆍ무규율ㆍ무법ㆍ무질서로 점철되었다.
정책 최고책임자가 누구인지, 경제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동북아 중심(hub)', 슬로건은 있으되 실천정책은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도 청와대의 아젠다에 정치ㆍ총선 승리가 최우선이고 경제는 뒷전이었다.
'국민의 대통령'이라 칭하는 정부가 포용하는 소수의 '국민의 힘'이 고작인 듯했다.
그들이 말하는 반(反)개혁세력인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기에 급급하다.
자칫 국민경제를 송두리째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가 무엇인가.
결국 백성 잘 살게 하자는 것일 터인데 그 길의 첩경은 기업인의 의욕을 살려 일자리 늘리기, 부가가치 창출, 조세납부를 독려하면 된다.
지금 경제에 관한 한 정부의 정책방향, 대통령의 리더십은 출타 중이다.
이와 같이, 정체된 한국경제를 다시 뛰게 하는 일은 대통령의 리더십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그가 국민경제 운용의 목표와 방향을 바로 세우고 정부 관료를 독려해야 한다.
아무리 규제 마인드로 무장한 관료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정치인들보다는 월등히 우월하다.
그들은 대통령이 정한 목표, 방향이 타당한 것으로 납득이 되면 합리적 실행방법을 추구하도록 훈련된 직업인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산술적 평균주의가 시장경쟁 원리와 상치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구 노력 없이 정부 시혜만으로 복지 평준화를 시도한 어떤 웅장한 계획도 동구권 몰락에서 보듯이 실패하고 만다.
근로자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에서 해방된 축제를 너무나 오래 즐기고 있다.
노사 다툼에서의 열세가 정부의 비호ㆍ묵인 아래 우세로 바뀌었다.
노동축제가 계속되다가는 모든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3류 경제국으로 침몰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성한 알은커녕 곯은 알을 낳은 기업이 아직도 많다.
기업은 경영투명성 제고, 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정치자금 요구를 뿌리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흐름 속에서의 한국을 의식해 책임 있는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외교 안보적 역할을 다하는 것도 길게 보면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
한국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분명히 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강대국 틈에서 생존번영하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반미감정과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외국 자본의 과장된 시장지배론의 파장이 우려된다.
2004년은 자칫 성장잠재력 밑바닥까지 잠식당하는 한 해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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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9년 출생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7년 영국 글래스고대 대학원 수료
1976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1970~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94~1995년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1999-2001년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
2001-2002년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재경부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 등 역임
한국경제와 금융(공저)
북한의 화폐금융제도(영문)
박정희 정부의 금융정책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