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상입법기능 제대로 발휘해야..安德根 KDI 국제정책대학원교수

安德根 국가의 통상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에도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행정,입법,사법의 3가지 기능이 각기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경우,행정부의 통상 기능은 더 설명할 바가 없을 정도로 그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사법부 또한 통상정책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담당하는데,지난해 무역위원회가 마늘 수입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을 위한 재심사 요청을 기각한 데 대해 농민단체가 행정법원에 제소한 예가 있다. 입법부는 통상에 관계된 국내법을 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통상 규범을 비준해 국내법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1967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입한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통상정책에 관한 입법부의 역할은 예외없이 행정부의 지원자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우루과이 라운드 이전까지는 대부분 통상협상이나 협정은 우리의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반면,수입시장 개방은 저개발국에 대한 예외조항 적용으로 유예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강력한 다수 여당 중심의 국회 구성 또한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입법부의 지원과 승인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WTO(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세계 통상체제는 근본적인 변혁을 겪게 되었고,우리가 GATT 체제 아래서 누려왔던 수준의 무임승차 권한은 어느 개도국에도 부여되지 않고 있다. 특히,많은 개도국들의 산업정책 혹은 경제개발 차원의 통상정책은 보조금 협정을 위시한 광범위한 WTO 규범에 의해 상당부분 규제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농구선수들 중 마이클 조던에 비유하며 치하한 한국의 경제개발 사례는 지금 시점의 여타 개도국들에는 그야말로 꿈 같던 시절의 얘기일 뿐이다. 현 단계의 우리 통상정책에서는 WTO 차원의 협상이건,FTA(자유무역협정) 차원의 협상이건 상호주의가 전제된 시장개방 조치가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므로,앞으로의 통상정책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국내 시장 개방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이해 조율과 이를 최종적으로 입법화해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이미 한·칠레 FTA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듯이,국회의 입법 기능이 통상정책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하다. WTO 협상과 줄이어 계획돼 있는 FTA 협상에서 제 아무리 훌륭한 통상협상 결과물을 가져온다고 한들,국회 입법절차가 뒤따라주지 못하면 해당 통상협상은 물론 우리의 통상정책 전반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뿐만 아니라,이러한 선례는 다른 국가들과의 후속 협상에서 우리의 입지를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따라서,통상문제에 대한 입법 기능의 수행은 출신 선거구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에 의해 통상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은 미국 의회조차 무역 촉진 절차를 만들어 행정부를 견제하는 한편,신속한 비준과 협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국회는 통상 입법 기능 수행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를 거치고 있다. 더욱이 사상 초유의 정치실험으로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 야당과 미니 여당이라는 입법부 구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국회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FTA를 승인한 입법부로 국사책에 기록될 것인지,행정부가 체결한 FTA를 기각한 최초의 입법부로 세계사책에 기록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국회의 FTA 비준은 단순히 칠레와의 무역 확대 차원이 아니라,변화된 세계 통상체제에서 우리의 통상정책 기조와 전략의 중대한 혁신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한·칠레 FTA 비준 결과는 향후 WTO 도하라운드뿐만 아니라,최근 개시된 일본과의 FTA 등 우리의 미래 통상체제 기틀을 수립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제조업 고용인구의 80% 이상이 수출과 관련된 부문에 종사하는 경제를 가진 국가의 입법부가 변화된 세계통상 체제에서 통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올바른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 dahn@kdischoo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