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접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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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갖 향응을 받으며 왕처럼 살고 있다.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이 밤마다 저녁과 술접대 자리를 마련한다. 젊은 여자들에게서 매일 5∼8통의 전화가 걸려오고,평균 3명의 여성으로부터 매일 밤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으며,내 아파트 침실은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이 내용은 한미은행을 인수한 미국 투자회사 칼라일 그룹의 한 20대 교포직원이 자기 친구에게 보낸 영문 e메일이었는데,뉴욕 금융가에 소문이 퍼지면서 공개됐다.
우리 접대문화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단면이었다.
접대란 정중한 예(禮)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인데도 우리 사회의 접대는 아직도 술과 더불어 여자가 따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남성 중심의 왜곡된 술접대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하루 저녁 술값이 수백만원에 이르고 술자리가 곧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접대활동이 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인 2백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84%가 접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들의 이러한 의식은 우리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향락적인 접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한 번에 50만원이 넘는 접대비의 경우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한다는 소식이다.
접대비 영수증과 함께 접대한 사람과 접대받은 사람,그리고 접대 목적을 상세히 기록토록 한다는 것이어서 피차간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다.
업무 추진비라는 명목으로 흥청망청 뿌려지는 접대비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명성을 훼손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접대하는 측만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문화와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접대라야 식사 한 끼 정도가 고작이고,거래처의 선물도 불과 몇십달러의 음악회 티켓이나 스포츠경기 입장권이 일반적이다.
당국의 이번 조치가 접대비를 변칙적으로 처리하는 또 다른 회계부정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접대문화가 어떻게 개선될지는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