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다시 본다] 인도 : (3) '경쟁력 원천은 교육'

"Seventeen sixes are(17 x 6 =) ?" "One hundred and two(102) !" 뉴델리 최대 재래시장인 찬드니초크 근처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 교사의 질문에 맞춰 50여명 학생들이 17단을 외우고 있다. 틀리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구구단만 가르치지만 인도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20단까지 술술 외울 수 있도록 교육한다."(수학교사 옴 라타씨) 수업은 물론 영어로 진행된다. 영어학급과 힌두어학급이 3 대 1의 비율로 편제된 이 학교에서는 힌두어학급에서도 몇몇 사회과목만 빼고는 모두 영어수업이 원칙이다. 인도의 정규교과 과정은 초등학교조차 국제 공용어인 영어와 과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지명광씨(35세)는 "인도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실력은 한국 학생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리콘밸리 연구원의 절반과 미국 이공계 대학교수 7천명을 배출해낸 인도의 경쟁력은 바로 이같은 교육에서 나온다. 이공계 중시 풍토 또한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학과별 인기가 공대 의대 상대 순이다. 법대는 그 뒤다. 법대나 상대가 3년제인데 비해 공대는 4년제라는 점에서도 인도가 이공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알 수있다. 인도에는 무려 1천58개의 4년제 공과대학이 있다. 한 해 졸업생만 27만1천명에 달한다. 석사학위 취득자도 3만7천명이나 된다. 여기에 더해서 1천2백31개의 3년제 기술전문대학이 매년 22만1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매년 쏟아지는 50여만명(3년제 포함)의 이공계 대학 졸업생들이 IT(정보기술)에서 제조업으로 성장폭을 넓혀 가는 인도 산업의 핵심 자산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대학은 인도공과대학(IIT). "IIT에 떨어지면 MIT(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에 가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IIT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IIT 졸업생들을 뽑아가기 위해 인도 기업은 물론 다국적 기업들까지 줄을 서 있다. 인도는 부모들의 교육 열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맹률이 약 40%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체 인구의 1%(1천만명)에 해당하는 상류층의 사(私)교육 열기는 한국 못지 않다. 뭄바이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켐프스 코너의 한 아파트. 밤 10시가 넘은 시각인 데도 5평 남짓한 방에 아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7학년(중2) 학생들이 공대 입학에 필요한 물리 과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인도 학부모들은 교육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려고 합니다." 강사 생활만 15년째라는 파라샤르 타카르씨(40)의 수입은 학교 교사의 10배 정도. "너나 할 것 없이 과외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바니 탈레자양(14)의 어머니는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대개 동일한 학교재단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좋은 사립유치원에 넣기 위해 임신하고 있을 때부터 미리 부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신 학원을 나가는 학생들도 있다. 서부 사막지대인 라자스탄주(州) 코타시에 있는 한 입시 전문학원. 11~12학년(고등학교) 학생들에게 IIT 입학에 필요한 수학과 물리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근처 학교에 등록만 해두고 실제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 숙식은 자취방에서 해결한다. 학원 주변에는 도시락을 판매하는 곳이 수두룩할 정도로 수강생들이 넘쳐난다. 인도 기술인력 양성의 또다른 축은 컴퓨터학원이다. 뉴델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NIIT. 지난 81년에 설립돼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컴퓨터 전문 학원이다. 한 학기 등록비는 1만6천5백루피(약 42만원). 잘 나가는 인도 직장인의 한 달 월급 수준이다. 그런데도 등록된 학생수가 31개국에 3백만명에 달한다. 12학년(고3)을 마친 고교 졸업생들과 취직을 앞둔 대학 졸업반이 주로 찾지만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갖춰져 있다. 8학기 코스에 등록했다는 꾸마르군(18세)은 "IIT에 합격할 실력이 못돼 대신 여기를 찾았다"면서 "졸업하면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름만 대면 종교와 출신지역, 신분이 한 눈에 드러나는 인도에서 공부는 어쩌면 신분 탈출의 거의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47년 독립후 신헌법은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피부 색깔과 사회적 기능, 직업에 따라 신분을 2천여개로 세분화한 카스트는 여전히 인도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관습법으로 남아 있다. "인도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선 대학진학과 유학을 통해 해외에서 이름을 바꾸거나 돈을 벌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KOTRA 강석갑 뉴델리 무역관장) 뉴델리ㆍ뭄바이=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