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2천억불시대] 종합상사, 新실크로드 개척 '뜀박질'

"이란은 중동의 '엘도라도'입니다. 한국 기업에 이만큼 성장 가능한 시장도 드물 겁니다." LG상사 이동주 차장.93년부터 5년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지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0년 이란 시장 개척의 임무를 띠고 단신으로 테헤란 지사에 부임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 등으로 산업활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란. 가족들의 안전문제도 있어 상사맨들마저도 부임을 꺼렸지만 이 차장은 거꾸로 이곳에서 오아시스를 보았다. 이 차장의 불굴의 집념은 결국 이란 국영석유공사에서 발주한 16억달러 규모의 '사우스파 가스플랜트'를 LG상사와 건설이 공동 수주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박경원 부장. 동부 아프리카 최빈국 케냐의 유일한 한국 종합상사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지사를 거쳐 2001년 8월 열사의 땅으로 넘어온 그에게 남은 것은 '악'뿐이다. 1인당 GNP 3백달러 내외. 거기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잔재로 상권이 완전히 인도인에게 넘어간 악조건 아래에서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수출역군이라는 자부심 하나. "그나마 얼마 안되는 시장을 저가의 중국 제품들이 무차별적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피말리는 전쟁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Made in Korea'를 짊어지고 사선을 넘나드는 이들은 '신(新) 실크로드' 개척자들이다. 수출 첨병 종합상사들이 원숭이해 갑신년을 맞아 새롭게 뜀박질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나섰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상사맨 특유의 기질을 발휘, 지난해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겠다는 각오다. 사실 지난 한 해는 종합상사에는 추운 겨울이었다. 연초부터 분식회계 파문이 불거진 SK글로벌은 존폐의 기로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SK네트웍스로 사명을 바꾸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현대종합상사는 거액의 자본 잠식 규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부실기업이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 다행히 채권단 우산 아래 들어갔지만 계열사 지원 없이 홀로 서야 하는 부담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새해를 이틀 앞두고서야 겨우 워크아웃 졸업이라는 숙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세계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새해는 종합상사에 새로운 기회의 시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의 지속적 성장은 그간 발빠른 행보를 보여왔던 종합상사들에 무한한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삼성물산은 내년 수출환경이 세계경기 회복세와 중국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비교적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섬유 화학 IT(정보기술) 등 전 분야에서 올해와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전략시장인 중국을 집중 공략하는 한편, 신용도가 올라간 러시아 시장과 이라크전 후 중동지역의 사업 기회 발굴을 위해 영업 네트워크를 집중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1백개 해외지사중 34개가 중국에 몰려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중국에서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다. 목단강 제지공장의 중국 거래소 상장과 제2공장 건설, 시멘트 등 지하자원 개발 등이 대표적 사업. 여기에 최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공략 포인트를 개발 중이다. LG상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속 위주의 사업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LG상사 역시 중국이 최대 전략시장. 컴퓨터 주변기기, 석유화학 및 철강제품, 휴대폰 단말기 등 경쟁력을 보유한 품목을 중심으로 기존 거래선에 대한 안정적 공급 물량 확보와 신규 비즈니스 발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밖에 지난해 회전초밥전문집과 하우스맥주집, 명품패션 수입 등으로 대변신을 시도한 현대종합상사는 올해도 내수시장에 대한 추가 공략을 시도할 생각이며, SK네트웍스는 기간통신망 시장에 대한 선점으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