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혁신의 현장] (5) 세원ECS ‥ '품질경영'

대부분 기업의 생산직 근로자에게 "당신이 이 회사에서 올리는 매출이 얼마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이 회사 전체 매출액을 직원수로 나눈 '1인당 매출액'을 답할 것이다. 하지만 세원ECS만큼은 다르다. 같은 라인에 투입된 직원들이라도 1인당 매출이 천차만별이다. 직원 개개인의 매출과 생산성이 정밀하게 측정된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매출과 손익이 철저하게 파악된다. 엄병윤 대표의 말처럼 "직원들이 각각 한 기업의 사장"인 셈이다. 이렇듯 직원 개개인의 능력 배양을 통해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세원ECS의 품질관리시스템은 짧은 시간에 이 회사를 업계 1위에 올려놓는 토대가 됐다. ◆ 계량화 못할게 없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세원ECS 공장. 월 단위로 전 직원들의 개인별 매출과 손실이 기록된 표가 걸려 있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단순근로자들이라도 그 차이가 분명하다. 물론 상급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각 생산공정과 직원들의 업무를 철저하게 계량화하고 수치화했기 때문이다. 각 라인의 생산성과 불량률의 실시간 체크 시스템과 전체 공정은 물론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총체적 생산관리 시스템이 갖춰 있기에 가능했다. 자칫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직원들도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1백PPM운동과 2BY2, 6시그마운동 등 끊임없는 품질관리 운동을 통해 생산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스로의 성과와 부족한 점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기유발 효과가 크다. 직원들에게는 이미 '프로정신'이 체질화돼 있다. ◆ "우리는 프로" 세원ECS의 명함은 직원에 따라 색상이 틀리다. 명함 가운데 검은 띠가 둘러진 직원이 있는가 하면 푸른색 띠가 둘러진 직원도 있다. 검은 띠의 명함은 블랙벨트를, 푸른 띠는 그린벨트를 뜻한다. 품질관리운동인 6시그마의 전문가 과정인 블랙벨트 과정 이수자와 그린벨트 과정 이수자들의 명함이다. 이들 직원의 사진은 현관 입구에 걸려 있다. 회사에서 성과를 거둔 직원들에게 '프로'에 걸맞은 대접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원ECS의 강점은 이렇듯 직원들의 프로정신 배양을 통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데서 나타난다. 직원들에게는 다양한 복지혜택과 임금수준은 물론 생산성 향상에 따른 성과급이 따른다. 예를 들어 사내 제안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효과가 나타날 경우 실적의 2%를 포상한다. 지난해의 경우 깜짝 아이디어를 통해 5백만원의 포상금을 받은 직원도 있다. 세원ECS의 공장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나타난다. 와이어링 하니스의 단자 꾸러미가 부서지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으로 감쌌는가 하면 제품 일련번호 체계를 보기 쉽게 재배치하는 단순 아이디어로 성과를 올린 사례도 있다. 회사는 직원들을 프로로 키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 단순 노동인력이 아닌 어떤 부문에 배치되더라고 즉각 가동될 수 있도록 전방위 능력을 키운다. '직원 레벨 등급제'는 이를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전 생산직 직원에 대해 모든 업무별로 교육단계(적색), 숙달단계(황색), 양산단계(청색), 인증단계(녹색) 등을 표시한다. 한 직원이 수동압력 부문에서 적색을, 중간스트립 업무에서는 녹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어느 직원이 어떤 업무에 뛰어나고 어느 업무에 취약한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미흡한 부분은 주기적인 교육과 분임조 활동을 통해 개선시킨다. 전 직원이 전 부분에서 전문가 수준인 인증단계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다. 엄병윤 대표가 바라는 세원ECS의 미래상은 직원들이 자부심과 프로정신으로 뭉친 회사다. "언젠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내셔널 머시너리'라는 회사를 방문했을 때 직원들 명찰 색상이 서로 틀리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물어보니 2대,3대째까지 다니는 직원들이 많아서 몇대째냐에 따라 색상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그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 대표는 세원ECS도 이같이 몇세대가 같이 다니는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 위기를 기회로 세원ECS가 국내 1위 자리에 올라서게 된 데는 직원들의 프로정신과 품질경쟁력이 바탕이 됐다. 특히 설립 2년여만에 외환위기에 맞닥드린 세원ECS는 경쟁사들이 잇달아 도산하는 동안 큰 성장을 일궈내는 바탕이 됐다. 물론 세원ECS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원ECS 내에서 아직도 '광주사태'라고 회자되는 '기아전자 와이어링 하니스 사업부 인수건'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기아자동차가 부도처리되면서 자회사였던 기아전자의 와이어링 하니스 사업부도 생존이 막막해졌다. 급기야 기아전자측에서 세원ECS에 입찰참여를 통해 사업부를 인수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당시 세원ECS는 신생업체였지만 업계에 '품질이 뛰어나고 탄탄한 업체'라는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세원ECS측에서 고심 끝에 결국 인수를 결정했다.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이지만 자칫 동반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시험대에 올라선 세원ECS는 가혹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인수 직후 아시아자동차로부터 그동안 밀린 2∼3개월 물량을 한꺼번에 주문받은 것이다. 기간은 불과 1주일. 세원ECS 광주 공장을 비롯해 전직원들은 철야작업에 들어갔다. 3일 밤을 한숨 못자고 꼬박 샌 직원들도 있었다. 이후 두달여동안 이 같은 업무 폭주가 이어졌다. 결국 상당수 직원이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산고 끝에 겨우 납품기일을 맞출 수 있었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단기간에 고품질의 부품을 공급받은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을 견뎌내면 업계 1위가 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동종업계에서 제일 하위권이라는 열등의식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꾼 기회가 됐죠."(김종근 부장) 평택=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