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산악 멜로 '빙우' .. 빙벽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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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당연히 산이 좋지.훨씬 크고,질투도 안하고,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서 볼 수도 있고,만질 수도 있고,항상 그 자리에 있고…."
경민(김하늘)은 사랑이 꿋꿋한 산을 닮기를 바란다.
그는 특히 눈덮인 고봉을 연모한다.
설산을 변함없는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잃었던 사람을 만난다'는 속설을 간직한 아시아크산은 그가 반드시 올라야 할 꿈이었다.
김은숙 감독의 데뷔작 '빙우(氷雨)'는 광대한 자연에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영혼들의 초상을 빚어낸 멜로영화다.
극의 구조는 아시아크산에 오르는 중현(이성재)과 우성(송승헌)이 회상을 통해 한 여자(경민)의 모습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조난당한 두 남자가 동사(凍死)를 피하려고 나누는 연애담은 '목숨을 건'사랑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 영화에서 영원한 사랑과 동일한 것은 산과 죽음이고 그것들은 다시 두 남녀의 사랑과 동일한 것이 된다.
눈덮인 연봉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잠재적인 죽음의 위협을 드러내는 장치다.
그 속에 놓인 인간의 존재는 왜소해 질 수밖에 없으며 남녀간의 사랑은 더욱 절실해진다.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랑은 멜로물의 오랜 주제이지만 산악을 소재로 채용한 점에서 참신하다.
극중의 두 남자는 최후의 순간에야 서로의 관계를 눈치채지만 관객들은 일찌감치 이들의 관계를 알 수 있도록 영화가 구성돼 있다.
이는 극적 흥미를 떨어뜨리지만 삼각관계의 애틋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눈부신 설봉에서 펼쳐진 비극적인 사랑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의 심연까지 닿도록 이끌어 극한 슬픔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한 여자에 대한 두 남자의 회상이 단조롭게 재현됨으로써 영화는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장면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해 재현된다.
로케이션 촬영의 부담 탓에 등장인물들의 동선도 토막토막 끊어지고 그에 따른 정서도 자주 단절된다.
이 영화는 또 산악을 무대로 했음에도 회상신에 집착하느라 정태적인 작품에 그치고 만다.
암벽과 빙벽 타기 등 역동적 장면들이 삽입됐더라면 흥미를 배가시켰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6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