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좌담회] '참여정부 1년 평가와 과제'

한국경제신문은 12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와 공동으로 '참여정부 1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김진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 김동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송복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신년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 원로는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가 조속한 경기 회복의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에 대한 대선 비자금 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로들은 또 지난 한해 한국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은 '분열적 리더십'에 기인한 바 크다고 진단하고 대통령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 각종 사회갈등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 참석자 ] 김진현 김동기 송복 ----------------------------------------------------------------- ▲ 김진현 이사장 =지난 해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경제는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웠고, 이익집단들의 욕구가 폭발하면서 정부정책 집행에 상당한 차질도 있었다. 특히 대선자금 사건으로 기업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됐던 것 같다.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해 혼란은 대통령이 야기한 측면이 크다. 어느 시대에나 대통령의 본분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인데 노 대통령은 갈등을 중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추긴 면이 많다. 아마 경험부족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난 1년간 청와대를 주도했던 '386세대'들이 새로운 시대의 국제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지난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마인드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던게 문제였다. ▲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1년을 회고해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나는 수출액이 1천9백43억달러에 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증시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는 수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다. 무엇보다 반(反)기업 정서가 사회전반에 확산된 것이 큰 문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에서 반기업 정서가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가 됐다. 또 4백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와 청년실업 문제도 한국 경제가 당면한 난관이다. ▲ 김 이사장 =두 분 말씀을 요약하면 '지난 1년은 대통령의 학습비용이 매우 높아 혼란스러웠던 한 해' 정도가 될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 사회 전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게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은행이 최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 송 교수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소득 2만달러 달성'이다. 우리경제가 연 5∼6%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만달러 달성까지는 12∼14년 정도 걸릴 것이고, 3%씩 성장한다면 20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책기조 아래서는 20년이 지나도 2만달러 달성은 어렵다. 정부 당국자들이 국가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행정국가 모델'에 얽매여 있다. 이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시장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시장국가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 김 이사장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시장경제 질서를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6년이 지나고도 상황이 별로 나아진게 없다. 정부는 여전히 규제의 칼자루를 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 김 교수 =요즘 기업인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사업할 마음이 안난다'고 하소연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공통된 약속중에 하나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한국은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간다. 노동비용은 갈수록 증가하고 정부 규제도 많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이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친(親)노동자' 정책을 버리는 것이다. ▲ 김 이사장 =대선 비자금 문제로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불행히도 이과정에서 반기업정서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기업활동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경제운용의 중점을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정작 투자를 해야할 기업들은 대선자금 수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제도개혁을 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기업들에 대해서는 '대사면'을 통해 새출발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 송 교수 =과거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건 그 만큼의 반대급부가 있어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정치권이 기업들에 뭔가 해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정치권이 기업들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힘은 여전히 갖고 있다. 지금은 정치인과 기업인 모두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노 대통령도 인정한 것 아닌가. 노 대통령은 과거 관행에 대해 대사면을 단행하고 경제살리기에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 ▲ 김 이사장 =노 대통령은 올해가 시끄러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선을 전후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는데 올해는 이런 문제들이 어떤 형태로든 정리 될 것으로 기대해 보자. 이익집단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 산업 공동화, 사회적 양극화 등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를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인가. ▲ 송 교수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사회전체 구성원의 미래가 달라 질 수도 있다. 대통령의 본분은 무엇보다 리더쉽을 통해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각종 집단으로 구성돼 있고 때문에 어떤 집단이건 이기적인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집단 이기주의는 충돌하게 마련인데 현대 국가에서 필요한 대통령의 리더쉽은 '통합적 리더쉽'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리더쉽은 '통합적 리더쉽'이라기 보다는 '분열적 리더쉽'에 훨씬 가깝다. 지난해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것도 대통령의 잘못된 리더쉽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통합적 리더쉽'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하다. ▲ 김 교수 =카네기 묘비에는 '나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참모로 써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취지의 비문이 씌여 있다. 노 대통령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기용할 것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사람을 써야 한다. 민주사회에서도 파워엘리트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최근 청와대 인사 개편에서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을 중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 김 이사장 =두분 모두 대통령이 새로운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해 주셨는데, 경제 분야에서는 시급한 과제들은 무엇인가. ▲ 김 교수 =정부는 지난해부터 '2만달러 달성'을 구호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구호에만 그쳤을 뿐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만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첫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국내 기업들에 대한 각종 역차별적 규제를 철폐하며 투자촉진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급변하는 국제 무역질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철학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뭔가 해보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은 버려야 한다. 그런 발상으로는 불필요한 규제만 늘어난다. 정부는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 기관' 역할만 하면 된다. 넷째,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주력 대기업들의 활동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 송 교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는 나라로 옮겨다니고 있다. 지금 우리정부는 국내에 있는 기업들을 외국으로 내쫓는 상황이다. 출자총액제한 같은 역차별 규제로는 더는 안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광범위한 반기업 정서 때문인데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 김 이사장 =규제 철폐와 반기업정서 해소를 통해 기업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은 경제계의 공통된 지적이요 요구인 것 같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과거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을 당시의 아픈 경험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시장질서 확립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1958년) 과학기술처 장관(1990~93년) 한국경제신문 회장(1994~96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현) 고려대 상과대학 졸업(1958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1971~97년) 한국경영학회 회장(1990~91년) 학술원 회원(현) 고려대 명예교수(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1960년) 서울신문 외신부 기자(1967~74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1975~2002년) 연세대 국학연구원 원장(1996~98년) 연세대 명예교수(현)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