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4일자) 예금정보 금융사 공유 문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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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경제부총리가 개인 예금정보를 금융회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금융실명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금융실명제법이 이같이 개정되면 금융회사들이 엄격하게 신용평가를 할 수 있어 한 회사에만 연체를 해도 전 금융회사가 거래를 끊는 현재의 신용불량자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금융실명법에 의한 비밀보장 원칙이 더이상 훼손되는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그렇지 않아도 금감원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등 행정기관이 계좌추적을 마구 남발하다보니 법에 의해 엄격히 보호돼야 할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계좌추적의 78%가 법원의 영장도 없이 이뤄지고 있어 국민들은 자신의 금융거래정보를 누군가가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찜찜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개인신용평가회사(CB)가 개인의 예금정보를 한군데 모아 놓고 금융회사들이 이를 공유하게 된다면 비밀보호 원칙은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행정기관에 의한 계좌추적 남발이 문제가 돼 왔으나 앞으로는 민간에도 개인의 예금정보가 완전히 노출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게 된다.
김 부총리는 '프라이버시'보다는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커지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모양이나 이는 잘못이다.
투명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비밀보장 원칙이 무너진다면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고 정상적인 금융거래마저 위축시키는 등 그 부작용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금정보 공유를 신용불량자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신용불량자제도를 폐지한다고 이들의 신용이 갑자기 좋아질리 만무한데도 이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신용불량자가 4백만명에 육박하자 단순히 숫자만 줄여보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만에 하나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편법으로 '실명거래' 못지 않게 '비밀보장'을 중요시하는 금융실명제법 본래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신용불량자제도'를 폐지한다고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비밀보장 원칙만 훼손할 따름이다.
김 부총리의 이번 발언이 신용불량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총선용 발언이라면 정말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