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혁신의 현장] (10ㆍ끝) 대한통운 ‥ '영혼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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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7시30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통운 본사.
새해 첫 팀장회의가 곽영욱 사장 주제로 시작됐다.
팀별로 지난해 성과를 발표하고 올해 계획과 목표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다.
회의 내용에 대해 직원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회사에선 사원들이 회의를 다녀온 중간 간부의 얼굴 표정을 살피며 회의 결과를 점친다.
하지만 대한통운 직원들은 다르다.
기획실의 사원들은 일찍 점심식사를 마친 뒤 컴퓨터를 켜고 사내 게시판을 열람한다.
회의 종료 3시간만에 회의 안건과 토론 과정 전체가 문서 파일로 올라와 있다.
회사 내에 간부들만 아는 비밀이라고는 없는 셈이다.
사안이 중요할 경우 실시간 사내방송을 한다.
지난 2000년 4월.당시 대한통운 정기이사회에서는 '동아건설의 대한통운 합병 및 분사매각'이라는 안건을 다루고 있었다.
곽 사장은 이 사안의 중요도를 파악하고 전 직원이 이를 공유토록 지시했다.
본사 전 직원들이 이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공개토록 했다.
전국에 흩어진 지점에 있는 직원들을 위해 내용을 사내 전자게시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렸다.
사원이 직접 사장에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것도 대한통운의 독특한 사내 문화다.
곽 사장은 자택에 팩스 등 직원들과의 직통라인을 두고 사원들의 건의사항을 일일이 확인한다.
인터넷을 통한 물류, 외국어 강좌가 개설된 것이나 접견실 사내이발관 등 복지시설이 늘어난 것도 사원들이 직접 사장에게 올렸던 건의에서부터 시작됐다.
"물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배송 차량이 회사를 1백m만 벗어나도 회사의 감시에서 멀어집니다.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지 못하면 생산성도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습니다."
곽 사장은 노사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법정관리라는 위기상황에 놓인 대한통운을 정상궤도로 이끌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이른바 '영혼경영'을 시작했다.
곽 사장이 직접 만들어낸 '영혼경영'은 직원 개개인의 영혼까지 사로잡는 회사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나타내는 말이다.
직원과 사장이라는 두터운 벽을 허무는 것이 '영혼경영'의 목표다.
"사장부터 말단사원까지 똑같은 정보를 공유하는게 회사와 직원들간 믿음을 두텁게 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사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도 근무의욕을 높였고요."
영업팀 전승희 과장은 곽 사장 취임 이후 추진해온 '영혼경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전 과장은 "곽 사장이 '쿨(cool:멋진)한' 맏형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영혼경영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직원들의 마음을 끌어낸 또다른 비결은 인사에 있었다.
곽 사장은 실무자들에게 과감히 중책을 맡겼다.
대한통운의 최대 사업장으로 부사장급이나 상무급이 맡아오던 인천과 광양 지사장 인사가 대표적이다.
배유한 인천지사장과 정경채 광양지사장은 모두 부장급이었다.
김욱환 국제영업지점장, 윤호섭 청주지점장 등도 현장 실력을 인정받아 차장급에서 두 단계 승진해 '임원급' 보직을 차지한 실력파들.
곽 사장은 "20년간 대한통운 실무를 담당하면서 실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임원이 지역사업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며 "현장 실무자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것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얻은 지혜"라고 밝혔다.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고 인사질서가 바로잡히자 강경했던 대한통운 노조도 회사를 돕기 시작했다.
대한통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난 2000년 대한통운 노조는 성과급과 상여금 전액을 반납하며 회사 회생을 도왔다.
김학수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앞장서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노조도 회사 일에 적극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통운의 '영혼경영'은 대외적으로 여러 번 인정을 받았다.
1999년과 2002년에는 노동부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뽑혔으며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로부터 '보람의 일터' 부문 대상을 받았다.
곽 사장은 지난해 정부와 민간단체로부터 대한민국 협상대상, 신노사문화대상 노사협력공로상, 전문경영인상을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