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 ‥ 禹昌錄 <법무법인율촌 대표변호사>

올해 들어 골프장에서 예절이 강제된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그저 예의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정도가 아니라 규정을 위반한 사람이 되어 여러 가지 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심하면 아예 퇴장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길래 예절을 강제할 수밖에 없게 됐을까? 예절을 중시하는 신사의 운동 골프가 이제 더 이상 '신사의 운동'으로 부르기 힘든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예절은 남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내가 틀렸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상대를 생각하는 여유에서 예절이 생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배려와 여유를 찾아 보기 어렵다. 배려는 커녕 극단적인 이분법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상대 입장을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그저 웃고 넘어 갈 일도 그저 결단을 내겠다고 시비를 가리고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대응이 일상사가 되고 사소한 다툼이 살인을 부르기까지 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잘못된 교육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 '기를 꺾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잘잘못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지 않는다. 그런 훈련은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은 나쁘다고 하고,또 경쟁에서 절대 져서는 안된다며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정당한 경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에는 정당한 경쟁,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경쟁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승패의 판단 기준도 극히 단선적이 됐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남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영달이 아닌 그 무엇인가를 위해 열정을 가진 사람." 미국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학의 입학처장이 제시한 궁극적인 학생 선발기준이다. 표현의 차이는 약간 있겠지만 미국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대체로 이 명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뽑아서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군(群)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학생을 뽑는다. 물론 학생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은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처럼 공부 잘 하는 순서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교육부총리는 취임후 다양한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엘리트 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낭보다. 필자는 이 기회에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재량을 더 넓혀주었으면 한다. 대학이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좋은 학생을 선발해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고 좋은 학생을 보는 기준은 각 대학의 교육 이념과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따라서 학생 선발권을 가진 대학들은 자기 대학의 이념과 특성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을 내놓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좋은 학생으로 일률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대학들 중에서 어떤 좋은 대학은 "예절이 바른 사람, 남을 배려하는 사람, 자신의 영달이 아닌 그 무엇인가를 위한 열정이 있는 사람"을 학생 선발의 기준으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들의 학생 선발기준이 이렇게 변하는데도 '아이들의 기를 꺾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경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을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적어도 그런 가정교육은 점차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교육이 지금보다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결과에 승복하는 정당한 경쟁이 자리를 잡고 사회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