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다시 본다] 동남아 : (6) '급감하는 노사분규'


서울 화곡동 소재 의류업체인 정화코리아의 캄보디아 프놈펜 현지 공장의 이름은 '에버그린'이다.


1995년부터 10년째 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평도 부사장은 "3~4년전부터 캄보디아 직원들의 눈빛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돈을 아무리 줘도 야간이나 주말 근무를 하지 않으려 했어요. 일을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자리에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어느날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야간작업이건 주말근무건 닥치는 대로 합니다. 한마디로 돈의 위력을 깨달은 셈이지요."



캄보디아는 복수노조가 허용되어 있다.
과거 공산주의의 전통이 남아있는 탓이다.


'에버그린'에도 노조가 3개나 있다.


처음에는 단체협상을 세번씩 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직원들이 자본주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노사협상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도 분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협조를 해주고 있다.


특히 "외국 기업인들이 들어와서 활동하는데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 아주 마음 편하게 살수 있다"는게 박 부사장의 얘기다.


베트남 하이퐁 공단에 입주해 있는 화학업체 신용케미칼.
이 회사 이정효 사장은 지난해 중순 한국에서 공장을 옮겨온 후 베트남 근로자들의 근면성에 먼저 놀랐다고 한다.


"한번은 직원들 전체가 새벽 6시쯤 일제히 출근했었죠. 아침 5시 인근 공터에서 단체 에어로빅을 즐긴 뒤 사장에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일찍 나왔다는 거예요. 어찌나 고맙던지…."


그날 일을 회상하며 흐뭇해 하던 이 사장의 얼굴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털어놓는 순간 이내 일그러졌다.


"한국에서 직원들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봤습니다. 금강산도 데려가고 해외여행도 보내줬죠. 그런데도 힘든 일은 싫다는 겁니다. 1년 넘게 기술을 가르쳐 놓으면 공장일은 지겹다며 훌쩍 떠나버리지요. 모든걸 처분하고픈 마음이었습니다. 베트남의 노사관계에 대만족입니다."


한ㆍ베트남 합작 철강업체인 한비코의 류항하 지사장은 "일에 대한 애착심이 누구보다 강한 근로자들이 있는한 베트남은 외국인투자의 천국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이 곳에서 노사분규는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태국도 '노사문제'가 이슈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태국 노동부청사에서 만난 암폰 니티시리 노동권익담당 부국장은 "연간 분규건수가 태국 전체로 2백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최근들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노동조합도 1천2백개 정도에 불과하며 강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암폰 부국장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태국 노동부의 관심은 노사분규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며 "태국 노동자들의 70% 이상이 기초교육을 받아 기술이 좋으며 성차별이 별로 없어 절반이상의 능력있는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일할 곳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노조보다는 기업에 유리한 노사관계법을 운영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의 최저 임금을 법으로 정해 두지 않은게 대표적 예이다.


노동쟁의가 '산업법원'에 회부된 후에는 파업이나 직장폐쇄가 원천 금지돼 기업경영이 마비되는 사태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파업사태는 단 2건.


대규모 집회는 없으며, 쉬는 시간에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조용히 행진하는게 노동쟁의의 전부다.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중한 법률을 적용, 노동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된다.


때문에 정부정책도 '노사관계'보다는 '산업인력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적자원부ㆍ교육부ㆍ청년스포츠부ㆍ원주민보호위원회 등 4개 부처가 합동으로 산업훈련대학 고급기술훈련원 등 수백개의 기술 전문인력 양성기관에 정부 지원을 몰아주고 있다.


이공계 인력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매년 13만명의 대학졸업자중 절반 이상이 산업기술분야 전공자들인 점도 특징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직장 이동(job hopping)'도 흔하며, 고액연봉을 받는 기술직들도 많다.


말레이시아 인적자원부의 하나피아 압둘 마지드 노동정책국장은 "말레이시아의 제조업 경쟁력은 근로자들의 일하고자 하는 의욕에서 비롯된다"며 "현재의 일하는 분위기로 보면 오는 2020년 선진국 진입 목표는 예상보다 빨리 달성될수도 있다"고 낙관했다.


'안정된 노사관계가 국가발전의 핵심'이라는 진리가 동남아에서는 더 이상 특별한 얘기가 아닌 것이다.

프놈펜(캄보디아)=육동인 논설위원ㆍ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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