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베이비 스트라이크 .. 咸仁姬 <이화여대 교수ㆍ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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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스트라이크',이름 하여 '출산파업'의 열기가 예상보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1.17명이라는 초유의 통계에 직면하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출산율 억제에 주력해 오던 정부가 "셋째 자녀를 낳으면 양육비를 지급해 주겠다"며 새삼 출산율 증가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저출산 시대의 출현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우리보다 30여년 앞서 출산파업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인구학자들은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가임기에 들어서는 1970년대 초부터 제2의 인구 폭증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으나,저출산 시대의 개막으로 인해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뿌리 깊은 남아선호가 출산율 감소에 걸림돌이 됨으로써 가족계획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인구학자들의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로 나타났고 대신 성비 불균형이라는 희생을 치르고야 말았다.
다만 우리의 경우는 출산율 감소 속도에 가속이 붙음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저출산 이슈를 단순히 출산 권유정책 차원에서 접근한다면,이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채 근시안적 미봉책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저출산 현상 속엔 다양한 차원의 사회 변화가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출산 이면에는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가 자리하고 있다.
'다산이 다복의 상징'이었던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노동력이자 노후보장책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자녀는 소비재 성격이 강화된 데다 노후 부양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특히 사교육비 지출률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는 우리네 특유의 정서를 고려할 때 자녀는 값비싼 소비재임이 분명하다.
한편 전업주부의 '기회비용' 증가가 출산율 감소에 한 몫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고출산 시대에는 취업주부를 선택하는 것이 전업주부로 남는 것보다 많은 비용 부담을 요구했지만,저출산 시대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맞벌이 부부가 확실한 규범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IMF 경제위기 이후의 '가장(家長) 이데올로기' 붕괴가 맞벌이 부부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출산이 여성에겐 이중 역할의 부담 및 커리어의 장애요인으로 다가옴에 따라,우연(by chance)에 좌우되던 출산이 선택(by choice)의 하나가 된 것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의 유연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시각과 장기적 전망을 갖고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이미 서구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출산과 양육 그리고 교육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내용의 다양한 가족복지정책을 개발해왔고,기업 차원에서도 친(親)가족주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친가족주의 정책의 주 내용으로는 직장탁아를 위시한 공보육 시설의 확대 및 가사의 상품화와 더불어 출산이 여성의 승진 과 성공에 장애요인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다채로운 고용 및 인사정책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도 핵가족 책임론에 의존하고 있는 가족복지정책에서 탈피해 출산·양육·교육을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족이 공동으로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과 더불어 출산·양육·교육에 우호적인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하겠다.
실제로 '일 우선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면서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실은 가족생활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정서가 지배하는 한은,고비용 저효율을 강요하는 낭비적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가 존속하는 한은,출산 및 양육의 일차적 책임이 여전히 여성의 부담으로 남아 있는 한은,현재 미혼여성의 3분의 1 이상이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인지도 모를 일이다.
보다 장기적 차원에서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숙고하여,정년 및 부양 개념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인구 과소사회'에 대비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일 또한 미루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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