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닌 신용에 목숨걸어라 .. '오사카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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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
일본 상도(商道)의 원천인 오사카 상인들의 철칙이다.
'노렌'은 상호가 그려진 무명 천으로 곧 신용을 뜻한다.
일본의 가게나 백화점 입구마다 걸려있는 노렌.이는 고객과의 신용이자 창업정신을 상징하는 존재다.
오사카에는 역사적인 기업이 많다.
586년 창업된 건축회사 공고구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탈리아의 금 세공회사 토리니 피렌체(1369년 창업)보다 8백년이나 앞선다.
6백년 역사의 화과자점 스루가야,5백년 전통의 이불가게 나시카와,4백년 된 히야제약 등 오사카에는 1백년 이상 된 점포나 기업이 5백개도 넘는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에 '상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오사카 지방의 경제력은 캐나다와 호주의 국가경제 규모와 맞먹는다고 한다.
'오사카 상인들'(홍하상 지음,효형출판,1만3천원)은 이같은 일본 경제성장의 동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14년 전부터 오사카를 수십 차례 드나들며 관련 자료를 모아온 논픽션 작가.
그는 유구한 역사의 '시니세(오래된 점포)' 12곳과 오사카 출신 재벌들의 성공 비결을 함께 비춘다.
5백70개 계열사에 25만명의 사원을 거느린 일본식 자수성가의 대표주자 마쓰시타그룹,'전례가 없으므로 하겠다'는 역발상으로 일본 맥주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아사히 맥주,일본산 위스키의 원조 산토리 위스키,세계 최초로 라면을 개발한 닛신 식품,게임 왕국 닌텐도,고품격 백화점의 대명사 다카시마야 백화점….
오사카 상인들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외형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사업구조,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창의성과 추진력,독창적인 일본식 경영 방식이 그것이다.
일본 상인들의 바이블 '석문심학'은 '소비자인 상대방도 납득하고 상인 자신도 납득하는 것'이 올바른 상행위라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中),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이라는 경영철학이 나왔다.
이러한 정신은 맥주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회전초밥,싱싱한 나뭇잎을 보고 착상한 초록색 모기장,주유소·세탁소·미장원을 한 점포에 모은 '주세미 마케팅' 등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는 '한신 타이거스(오사카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팀)가 우승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속설이 있다.
지난해 9월 오랜 부진을 씻고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한 뒤 놀랍게도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이 걷히고 일본 경제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상인이 화를 내면 천하의 제후도 놀란다'는 말처럼 '오사카가 움직이면 일본 열도가 살아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