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포퓰리즘의 역설 .. 尹桂燮 <서울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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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이었다.
페론과 에비타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은 아르헨티나를 후진국으로 만든 채 지금도 국민들을 신음케 하고 있다.
자원이 풍부한 멕시코와 브라질도 포퓰리즘 정책의 마수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그 결과 오히려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다.
정권유지에만 급급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은 중국의 발전을 한 세대 이상 후퇴시켰다.
포퓰리즘은 정치가들에게 마약과 같다.
민중주의는 정권 유지를 위해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메랑과 같이 해익이 거꾸로 돌아온다.
포퓰리즘의 역설은 세 가지 요소가 모여 이루어진다.
첫째,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다수의 서민들을 위한다는 기치를 내건다.
국민을 나의 편과 적으로 가르고 없는 자의 이익을 옹호한다며 감성으로 한 표를 호소한다.
둘째, 현시적인 정책이 대부분인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일단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포퓰리스트 정책들은 장기기반 정책보다는 뭔가 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는데 급급한 단기 정책들이 많아 정치적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셋째, 중장기적으로는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한다.
선심성·단기성 정책 개발과 집행에 주력하다보니 관료들은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과 그 해법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문제들을 악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정책 비용이 소요돼 재정이 악화되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렇게 포퓰리즘의 역설을 살피면서 최근의 정부정책을 돌아볼 때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동산정책이다.정부는 서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주겠다며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는 데에만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새로운 규제책을 마련하는데 급급하며 정작 시장과열의 원인인 부동자금의 유입을 막을 해결책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기업투자와 함께 부동산 투자 이익보다 나은 투자처를 개발해 자금을 유도해야 하는데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은 정부 규제책의 빈틈을 찾아 다시 다른 투기로 몰릴 것이다.부동산 규제정책으로 주택공급이 부족해지므로 강경 규제책에 박수를 치던 서민들은 몇 년 후 다시 오른 집값에 망연자실할 것이다.
사교육 규제정책 역시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정부는 서민들의 사교육비를 줄여주겠다며 학원과 과외에 철퇴를 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그러나 공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복안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 관료들이 새롭고 기발한 규제책을 찾고 있는 와중에 공교육의 질은 이 순간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교육과 유학 수요는 더욱 늘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교육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많은 서민들의 마음에는 다시 커다란 회한만 남을 뿐이다.
대학입학 시험제도 변경만으로 교육정책이 전부인 줄 아는 정치관료들이 경제성장의 동력을 빼앗고 있다.
복지정책도 정책의 호흡이 짧기는 마찬가지다.
노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정년 연장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장년·노년층의 표를 얻기는 하겠지만,기업들에는 노동의 유연성을 악화시켜 신규 채용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 대책 역시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신규채용에 대한 세액감면제도는 채용증대보다는 세수감소에 기여할 뿐이다.
공공기관의 일자리 창출도 지금까지 행한 구조조정이나 경영개선에는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근본적인 기업경영 환경개선을 통해 경기진작을 꾀한 결과로 고용이 본질적으로 늘 수 있게 해야 한다.
4월 총선에 몰입하고 있는 정치꾼들에게 포퓰리즘의 역설에 대한 경고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민중들이 이 역설을 모른다면 언론이 나서야 한다.
언론 매체들은 공약성 정책들의 실현 가능성과 장기적 역효과를 집중적으로 추궁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달콤한 포퓰리스트적 수사와 구호가 지닌 유혹을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서민을 절망으로 내모는 포퓰리즘의 역설을 직시해야만 한다.
정권유지에 급급한 포퓰리즘 때문에 우리 경제를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시킬 수는 없다.
kesopyu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