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교사평가'로 공교육 살리려면..洪準亨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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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準亨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교사평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사도 스스로 노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방안으로 학생·학부모나 동료교사가 교사를 평가,승진 등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교사평가제가 필요하다는 요지이다.
얼핏 보면 극히 당연한 얘기 같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다.
교육정책의 가장 예민한 부분, 뇌관을 건드린 셈이기 때문이다.
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들은 방법상 문제 등을 들어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고 전국 초·중·고교 교장단은 건국 이래 한번도 교사평가를 하지 않아 '교사들의 무사안일과 나태'가 조장되고 공교육의 부실이 생겼다며 교사평가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실 교육처럼 정책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넓게 형성돼 있는 경우도 드물다.
이를테면 교육이 백년대계의 핵심이며,사교육비나 교실붕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등이다.
하지만 목표달성을 위한 방법에 이르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경쟁 없는 교육'과 '교육 없는 경쟁' 사이의 타협 없는 배타적 선택의 문제로 돌변하고 급기야 비토세력이 생겨 극한대립과 격돌이 빚어지는 것이다.
왜 목표가 공유되는데도 그 실현방안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까.아마도 정책 논의의 참여자들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함께 협력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자신을 압도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저지해야 한다는 전투적 태도로 임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정책논의에 갈등과 대립이 없을 수는 없고,또 없어서도 안 된다.그러나 정책사안에 따라선 방어와 저지라는 전투적 접근만으론 정당성을 얻기 힘든 경우가 있을수 있다. 교사평가제 도입 논의 역시 그런 성격의 문제이다.
'실력 있는 교사'에 대한 요구는 학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제기하고 있고,아무리 학벌사회 대학입시제도의 병폐 등 근본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며 주의를 환기시킨다 하더라도, 평가제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면 공감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이젠 교원단체들 스스로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나 교장단, 학부모단체 등의 대안과 경쟁하는 능동적 자세를 보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정부 역시 정책과정을 하향식으로 이끌어 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교사평가제 도입'이라는 정책이슈가 가지는 사회심리적 맥락을 세심하게 배려해 제도설계에 임해야 한다.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는 경쟁 도입 논의의 방향이 주로 무능교사, 공부 안하는 교사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상투적 이야기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게 마련이다.
열악한 여건에서 교실붕괴니 교권상실이니 하는 위협을 받으며 정신적 외상에 시달려 왔던 터에 교육권력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른바 '학교장 자율권'에 입각해 '학원과 경쟁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교사평가제'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 법원에서도 적격심사제를 도입하고 근무평정제를 강화하는 등 도처에서 자기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교사들 역시 적실성 있는 평가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현장의 교사들이 아닌가.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도 반영돼야 한다.
정부로서는 어차피 세계챔피언급 교육열을 감안할 때, 사교육비 문제가 단기에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고, 공교육 회생이란 목표 자체에 좀더 치중해서 교사평가제를 설계해야 한다.
그 경우 무능교사의 퇴출보다는 우수교사에 대한 보상체계를 실효성 있게 제도화하고,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처우개선, 계속교육 및 재교육기회의 제공, 학교별 자율성 확대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현장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기대수준을 만족시켜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게 할 수만 있다면, 공교육 회복의 목표는 거의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교사평가제 도입을 위한 정책논의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