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일자) 접대비 실명제 재검토해야

이헌재 부총리가 50만원 이상 접대비의 실명제 도입과 관련해 "의도는 좋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우리는 부총리의 지적에 앞서 이 제도의 조기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이미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비현실적 규정은 지금이라도 당장 시정해야 마땅하다. 이 부총리는 과도한 접대비 규제가 기업활동과 내수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뿐 아니라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을 양산하고 있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실제 대부분 기업들은 영업기밀이기도 한 거래상대방 노출을 피하기 위해 접대활동 자체를 크게 줄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급 음식점과 유흥업소 가운데는 폐업을 고려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영수증을 50만원 이내로 맞추기 위해 비용을 여러 차례로 나눠 계산하는가 하면 몇 개 음식점들이 연합해 영수증을 처리하는 등 온갖 변칙적 방법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대한상의는 "접대 상대방을 기록해야 하는 금액을 50만원에서 1백만원으로 높여 달라"고 정부에 공식요청하기도 했다. 대부분 기업들은 "과도한 접대비 규제 때문에 영업상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접대비 규제는 '필요하지만 시기상조'라거나 '전적으로 기업에 맡겨야 할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재경부와 국세청은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시행한지 얼마 안되는 제도를 벌써 뜯어고칠 수는 없다"는 공식입장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접대비가 탈세나 음성소득 등의 수단이 될 수 있는데다 사회적으로도 과잉접대 풍토가 만연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시정하려는 취지 자체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타이밍이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접대비 실명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까지 있는 제도라는게 기업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잉접대풍토가 개선돼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현실적 여건을 무시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경제부총리까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제도라면 무리하게 고집을 부릴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시정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10년 이상 계속된 일본 장기불황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접대비 규제였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