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장사하는 법] '프랜드리베이비' 목포점 장경민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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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세계에서 경륜은 나이와 별개의 문제다.
'목포사나이' 장경민씨(31)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장사경험만 올해로 10년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장사에 투신,속된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는 셋째아들 장씨를 항상 못마땅해 했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이 평범하게 대학나와 직장생활을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버지도 장씨에게 두손을 들었다.
은퇴후에는 가게 일도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로 바뀌었다.
장씨는 현재 전남 목포시 옥암동에서 유아용품 전문점인 '프랜드리베이비'를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냉면집을 한시적으로 운영해 '목돈'을 거머쥐기도 한다.
하나도 버거울 30대 초반에 두개 점포의 사장이 된 것이다.
장씨는 조만간 목포에 프랜드리베이비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장사에 경험 만한 밑천은 없다'=장씨는 지난 92년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부모님 볼 낯이 없었던 그는 '장사'에 투신키로 결심했다.
처음엔 '투잡스(Two jobs)'로 출발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7시까지 신문을 배달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곧바로 제약 도매회사로 출근했다.
목포 인근에 약을 배송하고 퇴근하면 밤 11시께.
투잡스였지만 한 달 평균 월급은 40만원 남짓.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소득이었다.
6개월 후 투잡스 생활을 끝내고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무조건 대학은 가라"는 부모님과 타협을 한 셈이다.
이듬해 전문대인 목포과학대 전산과에 입학했지만 마음은 학업보다 장사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1학기를 마치고는 곧바로 입대했다.
95년 말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6개월간 오뚜기라면 대리점에 취직해 영업 경험을 쌓았다.
"장사에는 왕도가 없다.남보다 2배 많이 가고,2배 자주 가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6개월 동안 '몸으로 때우며' 체득한 장사관이다.
◆내 사업 벌이기=지난 97년 6월께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준비에 착수했다.
우선 매형이 운영하는 분유대리점에서 견습생활을 했다.
사장 준비 수업인 셈이다.
본사와의 관계,분유 유통 등 사업 전반에 대한 노하우를 어깨 너머로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다.
99년 2월께 목포시 동명동에 자신의 대리점을 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 처음으로 손을 벌렸다.
아버지는 1천만원을 기꺼이 지원해줬다.
대리점 개설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잡혀 주기도 했다.
그 동안 쌓인 장사 경험과 몸에 밴 근면성 덕분에 사업 초기 2천만원이던 월 매출이 6개월 후에는 4천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2001년 4월께는 목포시 대의동에 냉면집도 차렸다.
분유대리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시간 여유가 생긴 게 냉면집을 차린 배경이 됐다.
냉면집 창업비는 권리금과 점포임대료를 포함해 4천여만원.
이번에는 부모님께 지원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냉면집에 한 달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냉면기술을 직접 배웠다.
음식 중 냉면을 아이템으로 잡은 것은 비교적 마진이 높고 손이 덜 가는 데다 손님들의 '평균' 입맛을 쉽게 잡을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
그는 4∼9월까지만 한시적으로 냉면집을 운영하고 나머지 기간은 점포 문을 닫기로 했다.
점포 오픈 후 6∼8월까지 매출이 급상승,인건비와 1년치 월세(한 달 60만원) 등 제반 경비를 빼고도 1천5백만원 정도가 순이익으로 떨어졌다.
장씨는 지난해 4월께 눈물을 머금고 분유대리점 사업을 접었다.
목포에 대형 할인점과 기업형 슈퍼마켓 등이 생겨나며 매출이 점차 내림세로 돌아선 때문이었다.
대리점을 접은 대신 2003년 7월께 유아용품 전문점인 프랜드리베이비를 개점했다.
현재 이 점포 월 매출은 1천2백만∼1천5백만원 수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내년에 전남도청이 목포로 이전하면 유동인구가 불어 매출이 더 늘 것으로 장씨는 예상한다.
이를 위해 한 달에 60만원 정도는 꾸준히 홍보비로 쓰고 있다.
목포=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