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부총리 "주택대출 만기연장 해줘야"] 신용공황 막기위해 '先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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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5일 은행장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적극적으로 연장해 달라"고 당부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그만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선 은행간에 회수 경쟁이라도 벌어지면 가계 부문에서 급속한 신용경색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빚 독촉에 몰린 주택 소유자들이 부동산을 급매물로 쏟아낼 경우 주택경기가 급격히 붕괴될 우려도 크다.
내수 침체와 실업 사태로 고민 중인 정부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 올해 최대 금융위험 주택담보대출
올해부터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온다.
올해 만기도래 금액은 모두 42조1천억원.
지난해 28조1천억원에 비해 50%가량 많다.
'빚내서 집사기'가 유행병처럼 번진 때가 2001년이었고 당시 거의 모든 대출이 3년 만기였던데 따른 결과다.
부동산시장이 활황이면 만기도래 금액이 많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은행들 입장에선 대출 담보물(주택)의 가치가 과거보다 더 높아지기 때문에 회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반대 방향일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담보가치 하락을 우려한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금 회수에 들어가면 집을 팔아야만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개인들이 매물을 쏟아낸다.
집값은 폭락하고 가계신용 대란이 가속화하며 은행들의 건전성도 떨어진다.
정부는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이 나온 후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많은 은행들이 '부동산 거품'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하며 위험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어느 한 곳이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즉시 대출 회수 경쟁이 벌어질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이 부총리가 "대출 회수로 시장이 무너지면 여러분도 먹을게 없다. 그때는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3년 전 대출경쟁을 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누구도 뇌관을 터뜨려선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은행별 만기연장 정책
국민은행은 원칙적으로 만기 연장을 해주되 담보인정비율(주택시세 대비 담보대출금액의 비율)이 50% 이상이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20년 이상 장기 대출로 전환하도록 권유키로 했다.
금리는 이 경우 0.5∼1%포인트 올라간다.
3년 만기 대출은 평소엔 이자만 내고 만기 때 원금을 모두 갚아야 하지만 장기 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나눠낼 수 있어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나은행은 담보인정비율이 현행 기준(일반지역 60%, 투기지역 40%)보다 높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거절할 경우 0.2∼0.4%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물린다.
신한은행은 연체 경력이 있거나 부채비율(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이 2.5배 이상인 경우 가산금리를 최고 0.3%포인트 물리거나 원금 10%를 상환토록 하고 있다.
나머지 은행들도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는 가산금리를 물리거나 대출금 일부 상환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정부 후속대책은
은행들은 이 부총리가 "'한계거래자'를 신용불량자로 내몰지 말라"고 주문한 부분에도 주목하고 있다.
은행들 스스로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계거래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일부 상환을 요구하고 있는 연체자나 신용평점 미달자에게도 자동으로 만기 연장 혜택을 주라는 얘기로 들린다는 것.
은행 관계자는 "담보인정비율이 80%에 달하는 대출금도 이자 연체만 없으면 만기 연장을 해주고 있는데 연체자까지 연장해 주라면 최소한의 위험관리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그런 요구가 내려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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