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통령 취임 1주년, 국민의 고민..金秉柱 서강대 명예교수

金秉柱 사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 요즘에는 성형수술을 통해 나이를 지우고 얼굴을 고치는 게 유행이고, 언론 매체를 통해 머릿속에 일정한 틀로 각인(刻印)시키는 세뇌공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유전공학 기법을 동원해 복제인간을 대량 생산해 이들만의 세상이 되기 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회가 발전하는 힘의 원천은 바로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존공생하며 제각기 발산하는 창의적 에너지에 있다. 한국사회가 그 에너지 원천을 잃어가고 있다. 그 까닭은 다양성을 획일성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와 '그들' 사이를 가르는 금줄이 소름끼칠 만큼 확연해지고 있다. 남한 사회의 이 같은 금줄은 반도 북쪽 사회를 보는 눈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남한의 '그들'에 대한 증오가 지나쳐 북한 체제의 지배 세력을 '우리'의 일부로 보고, 그들의 압제 하에 신음하는 주민들의 고통에 눈감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입장인가. '우리'의 '그들'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 이 같은 의구심이 바로 한국 사회의 결속력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엊그제(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노 대통령이 출입기자단과의 오찬모임에서 그 동안 서로 다른 선입관 때문에 "마음 상하게 한 것에 송구"하고, "서로 추구하는 가치충돌"은 있을 수 있지만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내일을 위해 바꿔보자"고 했다. 또 과거 어느 대통령에 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음"을 피력했다. 워낙 언변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분이지만,말씀대로라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대목이 주목된다.그렇다면 '그들'을 매몰시키려는 '우리'의 움직임을 자제하고, '그들'도 큰 테두리의 '우리'속에서 함께 어깨동무하자는 제안이라면 획기적인 발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해서도 주민을 아우르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요즘 남한 사회의 '그들', 보수세력의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전두환,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한나라당이 와해 위기에 몰리고 재창당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어찌 되거나 이들 정치꾼들이 한국 사회의 보수를 대변하지 못한다. 한나라당의 인기가 열세인 것은 '차떼기'식 부패에 분노하는 중도 보수세력의 여론 때문이다. 한참 기세를 올리고 있는 '우리'세력은 어떠한가? 엊그제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한 검찰이 지구당 지원 불법자금이 한나라당 4백10억원, 노캠프 42억원이었다고 발표했다. 용하게도 10분의 1 수준과 엇비슷하게 맞추어진 느낌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작은 비리가 큰 비리를 지탄하지만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비리는 비리이다. 식욕 좋은 신진 정치인이 노회한 정상배를 뺨치는 경우를 보아온 경험의 교훈이다. 어느 정권이나 개혁사정으로 시작해 적대세력을 밀어내고, 곧 자리를 차지해 스스로 부정·부패에 탐닉하는 성향이 있다.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내일을 위해 바꾸자"는 말은 옳다. 문제는 바꾸지 말아야 할 한국 사회 핵심가치를 가려내 지켜가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한국의 핵심가치인가.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바로 이 같은 핵심가치를 창달하는 개혁이어야 국민의 지지 폭을 넓히고 굳게 다질 수 있고 세계 만방에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다. 지난 1년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가 왜 낮게 나왔던가? 그것은 바로 핵심가치 창달과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듯한 언행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변했듯이 향후 1년 크게 변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것이 총선거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고, 앞으로 또 다른 발언으로 다시 역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렇게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국민의 고민이다.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바꾸어야 한다. 바꾸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창달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누구에게 그 책무를 맡길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