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월요경제'] 우리 사회의 '리비히 법칙'

식물의 생장은 갖가지 양분이 아무리 충분해도 가장 부족한 한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물통도 한 귀퉁이가 낮으면 물을 그 이상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세기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견한 '리비히 법칙'(최소율 법칙)이다. '리비히 법칙'은 묘하게 인간 세상에 더 잘 들어맞는다. 고시에 과락(科落)이 있고,회의 시작시간은 맨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 인터넷 검색속도는 컴퓨터·회선·모뎀 중 가장 성능이 처지는 요소가 좌우한다. 노총각·노처녀가 결혼을 미루는 것도 '사소한 것 하나(배우자감)'가 없어서인가? 한 여성 정치평론가는 우리 국회를 '리비히 법칙'의 결정판으로 봤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가 공급돼도 일부 질 낮은 의원이 전체 정치판 수준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2일 본회의를 끝으로 16대 국회는 사실상 종료된다. '방탄국회'라도 열면 모를까 '4·15총선'까지 문을 닫는 것이다. 의원들에게 염치가 있다면 해를 넘겨온 민생 법안들이라도 매듭짓고 끝내길 바란다. 정치현실은 이렇게 눈꼴신데 계절은 눈부심을 더한다. 섬진강에는 매화와 재첩이 한창이듯 먼 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봄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5일이면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뛰어 나온다는 경칩(驚蟄)이다. 3·1절은 85주년을 맞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제는 무기를 만들 쇠가 모자라자 집집마다 놋쇠 밥그릇,숟가락까지 빼앗아 갔다. 요즘 '고철 모으기' 운동을 벌인다니 원자재난이 거의 '전쟁' 수준이다. 이번 주에는 이수영 신임 경총 회장과 한국노총(4일),민주노총(8일)의 잇단 회동이 가장 눈길을 끈다. 노사단체 수장이 바뀐 만큼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기대해본다. 아울러 장관이 교체된 노동부의 청와대 업무보고(4일)에선 올해 노사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장기주택대출(모기지론) 시대를 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2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 출범한다. 3일은 '납세자의 날'이다. 유공자 포상행사에 그칠 게 아니라 납세의무를 다한 국민들의 권리를 일깨우는 자리여야 하겠다. 경제지표로는 2월 수출실적(1일) 및 소비자물가(2일)가 있다. 수출이 여전히 호조라지만 내수불황에 물가불안까지 겹쳐 별 감흥이 없을 것 같다. 각급 학교는 일제히 새 학기를 맞는다. 새 교과서를 받고 새 교실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때의 설렘이 지금도 아련하다. 시작은 늘 중요하다. 다리미가 지나간 길은 곱기도 하지만 구김을 만들기도 하니까.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