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1절에 생각하는 한.일관계 .. 鄭在貞 <서울시립대 교수>

鄭在貞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한·일 관계는 지금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에 한·일 정상의 합의에 따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가 두 차례 열렸고, 일본의 대중문화 수입개방 조치가 4차례 실시돼 문화교류의 장벽은 대부분 사라졌다. 때맞춰 일본의 국기인 스모가 해방 이후 처음 서울과 부산에서 성황리에 공연돼 한·일 우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남북협력의 추진방법과 주한미군의 재편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언제나 지금처럼 평온을 유지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올해 벽두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의 항의, 정보통신부의 독도기념우표 발행에 대한 일본의 항의 등에서 보는 것처럼, 한·일간에는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아니, 두 나라가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그 빈도가 증가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한·일 관계에 영향을 줄 요인들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이다. 이 문제는 너무 오래돼 진부한 것 같지만 한?일 관계에선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내년 4월부터는 몇 년 전에 한·일 관계를 냉각시켰던 '새 역사교과서'의 검정과 채택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 그리고 과거사 처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다시 화제가 될 것이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을사조약 100주년''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 등의 기념행사와 학술대회가 줄을 잇게 된다. 종래의 경험에서 보면, 한국은 3·1절 등 국경일과 주요 사건의 기념일을 전후해 각종 행사와 대회가 개최되고, 그것이 매스컴을 통해 국민에게 널리 소개돼 한·일 관계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둘째, 남북 공조와 북?일 수교이다. 이 문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도 연계된 복잡한 국제적 사안이지만,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신의에 기초해 의견을 조율하지 않으면 상호 불신을 초래하고 관계를 악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대북정책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국민적 이슈가 돼 있다. 따라서 한국이 일본과 협력해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의혹의 해결에 대응하면서, 북·일 수교의 조속한 실현과 남북협력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국민정서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북·일 수교 과정에서 제기될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주장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한·일 양국이 남북공조와 북·일 수교 문제에서 서로 얼마나 이해하고 협력하는가는 지금까지 구축해온 한·일 관계의 강도와 심도를 측정해볼 수 있는 좋은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셋째,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의 경제문제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지금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주변에 중국이라는 경제공룡이 등장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서는 협력하고 공영하려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 일본에 비해 기술, 자본, 시장이 취약해 항상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해 온 한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일 경제관계가 몇 년 내에 자유무역협정의 체결로까지 발전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한국과 칠레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의 여론은 경제논리보다도 민족감정에 좌우될 때가 많다. 특히 역사인식, 과거사 처리, 남북공조, 북·일 수교 등이 얽혀 있는 한·일 관계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한·일 양국이 경제문제를 다룰 때는 이런 요소까지도 시야에 넣는 아량과 배포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상호 이해와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양국 정부는 주변의 국제정세를 개선하기 위해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고 심모원려(深謀遠慮)하기 바란다. 언론도 미래 세대의 공생공영을 위해 성숙한 여론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