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용불량자의 심리학적 해법 .. 이훈 <연세대 심리학 교수>

미국총기협회는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다음과 같은 자동차 스티커를 만들었다. "총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죽일 따름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폭력을 연구한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버코위츠 교수는 그 스티커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아쇠가 사람의 손가락을 당길 수 있다." 버코위츠 교수의 이론을 신용카드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표어가 된다. "카드가 사용자의 손을 당겨 그를 신용불량자로 만들 수 있다." 버코위츠는 1970년 1년간 미국 뉴욕의 총기 살인 건수가 비슷한 인구의 도쿄에 비해 약 5배나 많은 이유를 뉴욕인들이 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인 충동을 느끼지만 무기가 없다면 살인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사고는 싶은데 돈이 없다면 구매욕구를 억제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의 충동 억제 수준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수단이 준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행동에 잘 옮기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신용불량자가 어림잡아 3백80만명이고,그 절반이 20∼30대 청년이라고 한다. 단순히 카드가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카드로 가고 그래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잴 수 있다. 청년은 물론 소위 쇼핑중독증에 걸린 성인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쇼핑은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충동 구매든,습관적 구매든 왜 사람들이 카드를 북북 그어댈까? 그 결말이 비가시적이기 때문이다. 현금을 주고 물건을 사면 나의 주머니가 점점 얄팍해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드로 그으면 그것이 한 달 후에 결제되기 때문에 당장은 잔고의 소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자,이제 대책을 생각해보자.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단을 없애는 것이다. 카드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일부 계층,즉 청소년이나 무직자에게 카드 발급을 금지하는 것이다. 성인이라도 자기 통제력이 약하거나 중독 경향이 있는 사람은 카드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그런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아마 이번 신용불량자 급증으로 혼쭐이 난 카드회사가 이런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문제는 이미 발생한 신용불량자 처리 문제다. 그러나 이들의 빚을 무조건 탕감해줘서는 안 된다. 반드시 어떤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면 어떤 대책이 좋을까? 최근 신용보증기금에서 신용불량자를 채용해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온다. 즉 신용불량자가 채무를 변제할 수 있어 신용회사,신용불량자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 신용불량자를 몇개의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다. 학생집단인 경우,채무를 대여장학금 형식으로 바꿔 이자와 원금을 그가 졸업한 후 취업할 때까지 연기해준다. 둘째,우리는 칠레와의 FTA 협정으로 농촌에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농촌에 젊은 인력이 필요하다. 많은 신용불량자를 농촌에 이주시켜 이들이 선진국형 농업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신용불량자들이 아직 군대를 필하지 않았다면 직업군인으로 취업하게 한다. 지금 군복무 단축,주한 미군 감축으로 사병이 크게 모자란다. 앞으로 직업군인 제도가 도입돼야 하는 바 이를 앞당겨 신용불량자를 구제한다. (여자 신용불량자도 입대한다) 넷째,일반 무직자 집단의 경우,정부 공공사업장에 투입하거나 일손이 부족한 3D업종에 배치한다. 이는 제조업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한 신용불량자는 각종 사회봉사활동에 투입한다. 신용불량자가 너무 많아 사회불안이 야기되고 있지만 이들을 잘 활용하면 전화위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신용불량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조속히 추진되어야 하고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신용불량자 구제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hoonko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