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통령도 야당도 너무하는군요..金永明 <한림대 사회과학대학장>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역사에 남을 일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탄핵하느냐고 많은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질타했지만,정치적 노림수 속에서 이미 결론은 나고 말았다. 애당초 대통령 탄핵안 발의 자체가 무리였다. 대통령이 기자회견 도중에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했다고 탄핵 받아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탄핵 안받을 대통령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검은 옷 입고 싸움하는 대가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버젓이 자행하고 말았다. 측근 비리니 선거법 위반이니 불법 대선자금 따위의 문제들은 탄핵감이 아니다. 국민도 알고, 여당도 알고, 실은 야당 자신도 안다. 문제의 핵심은 4·15 총선을 앞두고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여야간의 더러운 이전투구일 뿐이었다. 여기에 무슨 헌법의 승리니, 국민의 뜻이니 하는 것이 들어갈 자리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왜 대통령은 탄핵을 받고야 말았을까. 물론 숫자에 밀린 결과이지만,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해답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대선을 개혁파 대 보수파의 대결로 볼 수도 있겠으나,사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세력은 그렇게 개혁적인 세력도 아니다.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는 오히려 보수에 훨씬 가깝다. 보수 일변도였던 우리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그 세력이 진보나 개혁으로 비쳐진 것이 사실이지만,그 정도의 노선 차이는 얼마든지 대화와 타협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정쟁을 악화시킨 것은 오히려 정서와 행동 양태의 차이였는데,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절반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불필요한 언행으로 가뜩이나 '고지 탈환'을 노리는 야당과 보수 언론을 계속 자극하고 지지세력을 이탈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서투르고 경솔한 고집불통이라는 점은 그가 한 온갖 쓸데 없는 말에서 다 드러난다. 야당이 공격한다고 재신임 받겠다고 하질 않나,불법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하질 않나. 해서는 안 되는 말들로 때로는 야당과 맞서고 때로는 국민을 협박했다. 선관위가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경고했으면 '앞으로 안 하겠다'고 하면 된다. 야당이 사과하라고 하면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정치다. 11일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하느냐"고 강변했다. 무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그럴 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능력있는 정치인이고,그야말로 지도자다. 그때 조금만 몸을 낮추었으면 이 사태는 또 한번의 정치쇼로 끝나고 국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책임을 대통령은 어떻게 질 것인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사과도 반드시 진심은 아닌 법이거늘,하물며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그 따위로 법리 논쟁하듯 항변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대통령은 12일 오전에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사과는 진작 했어야 한다. 설사 정말 잘못한 것이 없다 치더라도,정국을 이렇게 혼란하게 만든 한쪽 당사자로서 당연히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정치적 판단력도 없고 국민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도 없이 오로지 적과의 대결만 머리에 가득찬 사람을 어떻게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야당의 탄핵 발의와 강행을 더러운 정쟁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말 저 대통령과 함께 우리가 앞으로 4년을 편히 버텨나갈 수 있을까 매우 걱정되기도 한다. 이제 와서 대타협을 종용하기도 때가 늦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여야 모두 나라에 엄청난 혼란을 몰고 올 수 있는 국가 대란 사태를 야기한 엄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혼란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요구한다. ymkim@hallym.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