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정치에 멍드는 기업이미지

한국 헌정 사상 초유라는 대통령 탄핵 추진 소식을 접하면서 얼마 전 한국에서 온 한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중국통으로 통하는 K교수는 중국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언짢은 얘기를 들었다며 기자에게 그 내용을 털어놨다. "한국의 대통령은 잘 모르겠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거냐며 약간 '핀잔'투로 말하더군요. 그래서 괘씸한 생각이 들어 중국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4세대지도부가 등장했는데도 장쩌민(전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이 권력의 끈을 놓지 않고…"라고 대답해 줬지요. K교수는 짧은 대화였지만 그 순간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정치 얘기는 그 것으로 끝이었다고 들려줬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를 우습게 본다는 거지요. 한국을 깔보는 겁니다." K교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국가가 다른 나라로부터 제대로 존중을 받지 못하면 기업들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 국가의 이미지는 커다란 힘이 된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가 나빠질 경우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짐이 될 수 있다. "삼성이나 LG 같은 글로벌기업들은 이미 국가 프리미엄에 좌우되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국가 이미지를 등에 업고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중국에서 뛰고 있는 한국기업은 이미 2만개를 넘어설 만큼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71% 증가한 25억달러를 기록했다. 무역흑자도 12억4천만달러로 전달보다 5억달러가량 개선됐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중국을 상대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근 베이징천바오와 베이징청년보 등 중국의 조간신문에는 '다오루(倒盧,노(대통령)를 쓰러뜨린다)'라는 노 대통령 탄핵 관련 기사가 잇따라 실렸다. 신문을 받아든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의 정치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모습으로 비쳐질 게 뻔하다. 탄핵정국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해외에서 뛰는 기업인들에게 정치가 얼마나 더 많은 짐을 지울지 답답하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