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 탄핵쇼크 없었지만 .. 崔炳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을 시작한 그 순간, 외신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경우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망해 달라고 했다. 표결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고 하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그 기자는 졸라댔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상상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단기적인 시장혼란이 있겠지만 곧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기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이 "금융시장이 심각한 충격을 받을 터인데,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다시 되물었다. 난 "이미 정국의 불안함은 시장에 반영돼 있으니 탄핵이 만약 가결된다면 그 순간에 충격이 시장에 가해지겠지만 곧 평상시 상태를 회복할 것"라고 설명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기자는 지금 막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전해주었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라는 탄핵 반대세력과 찬성세력간의 극단적 이념대립으로 갈라졌지만,경제는 그런대로 버티고 있다. 예측한대로 주식시장은 탄핵당일 하락한 이후 며칠 만에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외환시장 역시 잠시 동요가 있었으나 금방 안정됐다. 내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대단한 혜안이 있어서 그런 전망을 했던 건 아니다. 탄핵결정 오후 도하 방송을 장악한 긴급간담에서 여당지향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정치학자들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심각히 걱정하는 판국에,경제가 별 충격을 받지않을 것이란 나의 예상은 당시 상황에서 어찌 보면 불손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곡해받기 십상이었다. 나의 그러한 전망은 주류경제학에서 정설로 통용되는 '경제주체의 합리적 기대이론'을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의 루카스 교수가 주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시장참여자들은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가장 합리적으로 이용해 경제행위를 하며, 시장은 그러한 합리적 행동의 집합적 결과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터진다 해도 이미 경제주체들이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이는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고 따라서 그 영향은 미미하다. 시장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합리적 기대이론의 논지이다. 막상 야당이 탄핵안 발의를 할 때만 하더라도 언론에선 야당의 내분으로 발의가 힘들다는 보도가 많았다.때문에 탄핵안 가결은 그 자체가 시장에 충격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문제는 왜 조만간 시장이 안정국면을 되찾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했느냐는 점이다.이미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장의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 터인데 말이다.역설적으로 그 때의 자유낙하의 고통이 오늘의 안정국면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외환위기 때문에 이뤄진 과감한 주식시장 개방,완전변동환율제 도입 등은 시장이 보다 합리적으로 작동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한국 금융시장은 세계시장과 연계돼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장이 안정세를 회복했다는 것이 한국호가 순항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 동안 경제는 방치됐다. 정권의 최우선 순위는 신당 띄우기와 보수언론과의 전쟁이었다. 동북아경제허브가 되겠다는 국가가 우선순위와 원칙도 없는 인기영합주의로 갈팡질팡해 국내외에서 불신당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은 약자에 대한 관용이란 명목으로 인내됐고,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은 약자라는 이유로 끝없는 보상만 요구하고, 잘 나가는 산업은 호도된 반세계화 논리로 자신들 것만 지켜야 한다고 강변하는 와중에 정부는 결단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했다. 시장참여자들은 이미 지난 1년간의 학습과정에서 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모두 다 알아버렸고 이미 여기에 맞춰 기대수준을 형성했다. 때문에 탄핵정국의 와중에서도 한국경제는 경기의 밑바닥을 헤어나지 못하면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밑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우울하기만 하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byc@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