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특소세 인하의 정치학

국회의원 총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둔 23일,정부는 승용차를 포함한 25개 품목에 대한 특별소비세율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탄력세율 적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날 재정경제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눈에 확 띄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함으로써 '소비를 앞당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대목이다. 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면 미래에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지출을 앞당기려는 성향이 나타나게 된다. 지난 2001년 11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승용차 특소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한 결과 자동차 판매량이 급증한 선례가 있다. 하지만 특소세율이 제 자리로 돌아간 이후 자동차 내수시장은 다시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었다. 김진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 초 신년사에서 "미래 소득을 앞당겨 쓴 소비는 올해 상반기까지 점진적인 조정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득을 미리 지출하는 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은 것이어서 당장 소비 증대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지만 이후에는 판매 부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한시적인 특소세 인하 조치가 '총선용'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이날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지만 장차의 소비를 앞당기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무리한 내수부양책으로 한국의 경제 사이클이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궤도 이탈할 가능성이 짙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소비를 앞당기는 경기부양책'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홀로 호황'을 구가할 수 있었으나 작년과 올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결과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경기 회복기에 접어든 반면,한국은 원자재 가격 급등 속에 경기는 오히려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번에 발표된 특소세 한시 인하 조치가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욱 왜곡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기우일까. 현승윤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