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성 정치인

마거릿 대처가 에드워드 히스를 물리치고 영국 보수당 당수에 뽑힌 건 1975년 2월 11일이었다. 59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지 16년만이었고,나이로 치면 만 50세(25년 10월생)가 채 안됐을 때였다. 그로부터 29년.한국에서도 여성이 국회 제1당 총재로 선출됐다. 우리의 경우 65년 박순천씨(1898∼1983)가 민주당 당수에 올랐지만 이후 여성 당대표는 커녕 국회의원조차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다. 15대까지 여성의원이 평균 3%를 못넘고 16대에 겨우 5.9%가 됐다는 건 여성의 정계 진출이 얼마나 부진했는지 보여주고도 남는다. 상황은 그러나 달라지는 모양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성이 제1야당 총재가 됐는가 하면,여야 3당 대변인이 모두 여성이고,사상 유례없는 52명이 지역구 후보로 나섰다. 여성이 국가 수반은 물론 의회 의장을 맡고,여성의원 비율이 40%이상인 나라가 속출하는데도 우리나라에선 유독 여성정치인이 적었던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치는 남자가 하는 것'이란 가부장제 사회의 선입견에 따른 지망생 부족,남성들의 '끼리끼리 문화'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힘의 질서와 부정부패 고리를 못견딘 여성들의 중도탈락 등.여성 총재의 탄생을 비롯한 정계의 여성파워 부상은 이런 정치판에 변화의 바람,그것도 일대 폭풍이 몰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게 틀림없다. 여성 정치인들의 짐과 과제는 엄청나다. 수십년동안 되풀이돼온 부패의 악순환을 끊고 대립과 갈등을 풀며 뿌리깊은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크고,남성 위주의 기존 정치풍토를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뭔가 바꾸려면 참여해야 하고,하기로 했으면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처의 가장 큰 성공비결은 주위의 비난이나 비판에 좌우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한 점이라고 한다. 여성이 조직의 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게임이 재미없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한국여성의 강인함과 열정은 익히 알려져 있거니와 여성정치인들이 어지러운 정국을 어떻게 극복하고 밝은 한국을 만들어갈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