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헌재 사단과 카드산업 시그널링 ‥ 金文煥 <국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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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경제계의 키워드 하나가 새로이 등장한 '이헌재 사단'이다.
이런 이헌재 사단을 가장 잘 수식해 주는 표현이 '구조조정의 달인' '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말이다.
우리경제가 구조조정이란 메스가 언제까지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작금의 한국경제는 어제의 위기극복 주역들을 다시 필요로 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그만큼 현재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강력한 희망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첫번째 구원투수로 등장한 검증된 구조조정 전문가인 LG카드의 박해춘 사장.
그는 1998년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취임한 후 1조원 이상의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을 6년 만에 3천3백억원 흑자를 통해 1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상환함으로서 알토란같은 보험사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취임 이후 가장 급하게 그를 찾는 이유도 바로 LG카드, 아니 카드산업의 회생이 국내 경제문제의 가장 시급한 현안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결의지를 시장에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가 원인불명의 사지통을 호소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 성장통이다.
이러한 성장통은 산업의 각 부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산업성장통'의 원인은 어린이 성장통에 비해 좀더 복잡하고 여러 가지 가시적인 원인들이 있지만 성장을 위한 아픔인 것만은 확실하다.
신용카드산업 역시 엄청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자칫 아픔이 너무 심해 의사가 죽을병 정도로 오진할 만큼 아픔이 큰 것이다.
아픔을 직접적으로 당하는 카드회사, 신용불량자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지켜보는 정부나 국민들도 그들이 지불해야 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카드산업의 사례를 볼 때 국내 카드산업이 죽을 병이 아닌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세기 초 '플라스틱 머니' '소비자 금융의 꽃'이라 불리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카드산업은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많은 성장통을 앓으면서 커오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때도 미국 카드산업의 경우 1980년 이후 성장률의 부침은 주기적으로 있었으나 카드산업은 꾸준한 성장을 보여오고 있다.
카드산업의 시장 잠재력은 그 만큼 무궁무진하며 현재 유통되고 있는 지폐나 주화를 대체하는 스마트카드나 전자화폐 사용이 앞으로 커질수록 디지털 금융시대를 이끌어 갈 산업의 첨병이 돼 시장에서의 신용카드 역할도 커질 것이다.
최근 외국 금융기관들의 국내 횡보는 가히 점입가경이다.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를 계기로 국내 에 진출한 외국계 상업은행들은 단순한 주변자인 니치 플레이어로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메이저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카드사에 대한 외국계 은행의 러브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은행 뿐만 아니라 한국 소비자 금융시장의 잠재력을 크게 평가하고 있는 스탠다드차타드, GE캐피탈, HSBC 등도 국내 카드사를 인수하기 위한 담금질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감안할 때 지금을 매입의 적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에 따르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시장의 성장성을 감안할 때 그 정도의 리스크는 감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투자는 리스크를 반드시 수반한다'라는 투자의 ABC를 국내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항상 뒷북을 치는 국내 투자자들과 국내 금융기관들의 행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잘된다고 하면 하루가 멀다하고 우후죽순처럼 커졌다가 망가지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문을 닫아 버리는 투자행태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카드산업에 대한 정부의 시그널링과 카드사들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비추어 볼 때 침체의 긴 터널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현재 국내 카드산업이 겪고 있는 구조조정 과정을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으로 속단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통의 아픔으로 인식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