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예견된 조업중단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공장 문을 닫는 데 결정타 역할을 했지만 사실 이런 사태는 오래 전부터 예견돼 온 것 아닙니까. 아직도 몇개 업체가 더 문을 닫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 25일 금강화섬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들은 화섬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업계의 일관된 주장은 이번 사태가 금강화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화의 업체였던 금강화섬은 다른 부실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안 없이 경쟁력 없는 범용제품 생산에만 열을 올려 왔다. 채권단도 단기적인 손실을 우려,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부실기업의 생명 유지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결국 화섬업계의 구조조정은 물 건너 가버린 얘기가 돼 버렸다. 이제 공장들은 속속 대책없이 생산라인의 스위치를 끄고 있다. 금강화섬 채권단은 지난 2001년 코오롱에 회사를 팔아치울 수 있는 기회를 맞았었다. 하지만 가격을 문제 삼아 매각을 거부했다. 채권단의 관심은 충당금 쌓기에 집중됐을 뿐 회사의 체질 개선은 결코 대상이 아니었다. 채권단의 '산소마스크'에 목숨을 부지한 부실기업들은 계속 공장을 돌려 공급 과잉과 저가 경쟁을 부추겼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대부분 화섬업체들의 채권을 한 은행에 몰아넣은 정부도 문제였다. 금융권 구조조정이라는 자신들의 문제에 직면하자 우리은행은 화섬업계 구조조정을 이끌 여력을 잃어버렸다. 체질 개선을 외면한 화섬업체들의 모럴 해저드도 금강화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차별화 제품을 개발,흑자 전환에 성공한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워크아웃 기업들은 범용제품만을 양산하며 경쟁력을 잃어갔다. 워크아웃 기업들과의 불공정한 경쟁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정상기업들도 무분별한 덤핑 공세를 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채권단,업계 등 3자가 공동으로 잉태한 화섬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대한화섬(단섬유 생산라인 가동 중단),금강화섬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제2,제3의 금강화섬 사태를 막을 수 있는지 중지를 모을 때다. 유창재 산업부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