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ㆍ일 FTA 기피할 이유 없다..鄭仁敎 인하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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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부터 논의를 시작했던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드디어 내일 발효된다.
농업 개방에 대한 반대로 협상 및 국회 비준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고,급기야 '농촌당'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도농(都農)간 갈등을 노정시키기도 했다.
칠레와의 FTA 발효로 우리나라도 지역무역협정의 세계적인 추세에 참여하게 되었으며,그 동안 칠레 현지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 수출기업들에 대한 경쟁상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첫 FTA의 국내 정착으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제고와 더불어 추진 역량을 한층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업 개방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첫 FTA를 발효시킨 것은 다행이지만,추진 과정을 뒤돌아보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대외통상 현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입장을 정리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또한 부처별 협상 담당자들이 너무 자주 바뀜으로써 협상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2002년 10월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 칠레와의 FTA를 추진했던 국민의 정부가 서둘러 국회 비준 절차를 준비했어야만 했다.
비록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하나,당시 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국회 비준까지 가능했을 것이고,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네 차례의 국회 비준 시도 과정에서 농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지원 및 피해보상을 위한 기금이 당초 8천억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증액됨으로써 향후 다른 FTA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일본과의 FTA 협상에서 피해가 예상되는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칠레와의 선례를 근거로 보상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 이후 우리 정부는 중장기 FTA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고,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싱가포르 일본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아세안과의 FTA를 검토하는 공동연구회를 가동 중에 있다.
그 동안 정부는 FTA 추진기구를 확충했으나,현재 가장 중요한 통상 현안인 FTA 업무를 내실있게 처리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대외협상을 총괄하는 통상교섭본부의 경우,FTA 전담과를 현재의 2개에서 4개로 확대하고 이를 총괄하는 추진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일본은 우리나라와의 협상을 위해 수십명의 전담인력을 외무성에 포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일본과의 FTA 추진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이 높고,일본의 평균 관세율이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관세 철폐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FTA의 성격상 모든 산업 분야가 이익을 볼 수는 없더라도 국가 경제에 대한 실익을 확신할 수 있는 협정을 우리 정부가 추구한다는 점을 업계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 구조조정의 고통도 반드시 부정적인 요인만은 아니며,경우에 따라 우리 산업구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고,일본이 멕시코 아세안 대만 등과 FTA를 체결,생산시설을 이들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우리 경제가 받을 불이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일본도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경제적 및 정치적 기회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 정부는 서로에 이익이 되는(win-win) FTA 도출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경제적 대국이 FTA 협상을 주도해 왔으며 당사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협상 타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이 아세안과 FTA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비교할 때 일본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우리나라와의 FTA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하는 일본이 협상에서 리더십을 보이지 않을 경우,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inkyo@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