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무엇으로 살아갈지 고민할때..李榮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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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꽤 오래 전부터 태평양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시대에서 우리 한국의 위상이 어떠할지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으로 세계경제의 무게 중심이 태평양으로 옮겨 올 것은 확실시되나, 아무리 동북아 중심경제의 이상을 외쳐 보아도 한국의 위상은 불확실하게만 보인다.
우리는 오늘의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과연 무슨 산업으로 어떻게 생존해 갈 것인가?
최근 포천지는 50년 후의 세계 10대 가상기업을 전망했다.
여기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인도의 기업조차 포함돼 있으나 한국의 기업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 최근 인도가 정보통신기술을 기초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며 태평양 시대에 새로운 경제강국으로 등장하고 있어, 한국의 위상이 더욱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기술 중진국의 이점을 누려왔다.
중국에서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고도의 기술상품보다는 먼저 한국의 중간기술 제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러한 덕에 한국은 중국에 대한 수출증대는 물론이고 사양 산업을 중국으로 진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기술중간국으로서의 이점을 얼마나 더 오래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정보화와 세계화 현상은 세계 산업의 국제적 분업체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국경이라는 장벽과 거래비용이 높아 기술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웠을 때, 전통적인 무역이론은 각국에 주어진 기술과 생산요소의 부존 정도에 따라 국제분업의 형태가 결정되고, 이 때 각국은 나름대로의 비교우위산업을 지니게 된다고 설명한다.
과거의 한국과 미국의 분업관계에서 미국이 기계제품과 의류제품을 모두 한국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으면서도, 미국은 의류산업보다 기계산업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제한된 자원으로 기계를 생산하고, 이를 수출해 한국으로부터 의류를 수입해서 쓰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과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기술 중진국인 한국으로부터 의복을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됐다.
미국이 지닌 높은 의류 생산기술을 바로 중국으로 이전해 중국에 있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뿐 아니라 중국의 엄청난 시장수요로부터의 이득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술중진국이 설 자리는 없다는 말이다.
최근 저렴한 통신비용 덕분에 미국이 전화교환과 같은 서비스 용역을 인도 현지로부터 직접 아웃소싱하는 현상도 IT산업 발전에 따른 국제분업의 새로운 형태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도기술 산업은 선진국에 집적되고, 노동집약적 산업은 저렴한 임금을 지닌 국가나 큰 시장을 지닌 국가에 집중돼, 중간수준의 기술을 지니거나 수요 면에서도 큰 시장을 지니지 못한 한국과 같은 중간국가에서는 산업의 공동화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최근 국제분업이론의 예측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산업으로 우리의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가? 기술중진국으로서는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권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의 목표를 '잘 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나라'로 규정하고 탈자본주의적 중형(中型)국가를 우리의 발전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총선을 맞아 투표수의 극대화를 노리는 각 정당의 공약을 보더라도 선진기술국가를 목표로 하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간의 선택은 없다.
선진기술국가를 지향하든지, 아니면 태평양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하든지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이제 무엇으로 우리의 생존을 이어 갈지 심각히 생각할 때이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