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진의 첫 시집 '질 나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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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시인 문혜진(28)의 첫 시집 '질 나쁜 연애'(민음사)가 나왔다.
시인이 20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쓴 62편의 시를 모은 이 시집은 약물에 취한 도시 뒷골목 아이들의 반항과 일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순수성에 대한 고통과 상처입은 영혼에 대한 연민,그리고 기계적이고 비인간화된 도시문명을 원초적인 생의 에너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표제작 '질 나쁜 연애'는 자유를 향한 젊은 시인의 열정과 갈망을 도발적 언어로 표현했다.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가겠어/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낡은 오토바이의/바퀴를 갈아 끼우고/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구름의 일요일을 베고/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얼굴을 묻을 거야'
'날것에게 몸을 내어주다'라는 제목의 시는 '쇳덩이'로 상징되는 현대 도시문명에 유린당하는 '불모의 땅'으로서의 여성의 운명을 거칠고 참담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외눈박이와 절름발이들의 대리모'로 표현된 여성의 몸은 '내 몸을 가져도 좋아!'라고 절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다.
시인은 '인공부화기처럼 컴컴한 자궁을 열어두고 언제나 같은 온도를 유지하지'라며 현대 문명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차갑게 감응하는 몸의 상태를 보여준다.
'피투성이 분홍 벽/금간 벽 안에서 무너져가는/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로 시작되는 '분홍 벽'도 병들어 신음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