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日 다시 부는 '한국붐'

요즘 일본에선 '한국 열기'가 뜨겁다. 일본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한국 정치는 물론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탄핵 정국의 뒷배경이나 총선의 정당별 의석수까지 분석하는 마니아들도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당시의 열기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붐'의 진원지는 대중 스타들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씨는 지난 3일 일본에 온 뒤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가 도착한 날 하네다공항은 5천여명의 열성팬이 몰려 마비됐다. 다음날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팬미팅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팬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오사카에서 배씨를 보기 위해 상경한 한 50대 여성팬은 "비틀스 방문 이후 최대 인파"라고 말했다. 배씨의 상대역으로 열연했던 최지우씨도 3월 말 일본을 첫 방문,'최지우 신드롬'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3월 하순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되면서 '한국붐'은 스포츠계로 옮겨붙었다. 이승엽 선수가 4,5일 연속 홈런을 터뜨려,팬들을 열광시켰다. 4일 첫 홈런은 1백50m짜리 장외홈런으로 대화제가 됐다. 만년 하위팀이던 롯데마린스는 이 선수 덕분인지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일본열도에서 부는 '한국붐'은 월드컵 때와는 크게 다르다. 한국이 전국민의 뜨거운 응원 속에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자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폭발적인 힘에 놀랐다. 그들이 갖지 못한 한국인의 잠재된 열정과 응집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이 여야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성사시킨 뒤여서,자민당의 장기집권에 식상했던 식자층에서는 한국정치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었다.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초일류 글로벌기업이 속속 등장,'한국 경계론'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올해 재현된 '한국붐'은 마니아들이 정치 뉴스나 대중문화를 즐기는 수준이다. 일본경제가 살아나고,한국경제가 죽을 쑤면서 한국경계론은 수그러들고,그 자리가 흥미거리 뉴스로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