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車값'이 귀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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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값이 '차(車)'값만도 못하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지난달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회사원 J모씨(32·경북 구미)는 요즘 툭하면 울화가 치민다.
한참 일하실 아버지가 비명횡사하신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사망에 따른 법정 위자료가 3천만원대라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부터다.
사고당시 완파된 상대차량 소유자가 7천만여원의 차량 보상금을 받는다는 변호사의 설명에는 더 기가 막혔다.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 재해사망자에게 지급하는 '사망사고 법정 위자료'가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위자료가 물가나 임금상승률 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유족들의 불만이다.
국내 법원이 관행적으로 그어놓은 위자료 상한선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5천만원.
'죽음의 가치'를 사람마다 달리할 수 없다는 '취지'가 절대액 기준의 배경이다.
문제는 이 상한선 자체가 시대변화와 무관하게 '묶여'왔다는 점이다.
3∼4년 간격으로 1천만원 정도씩 인상돼 왔던 법정기준 위자료는 지난 98년 '인상'을 끝으로 제자리걸음 해왔다.
외국과의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소득격차가 3배가량인 일본의 법정위자료 상한선은 국내기준의 10배(2억5천만∼3억원 선)에 달한다.
미국은 아예 상한선 개념이 없다.
일각에선 문제의 원인이 재판부의 '기계적 계산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법원 내부 산정지침에는 고인(故人)의 나이와 학력, 소득수준 등을 감안하도록 돼 있지만 계량이 힘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본 5천만원에서 본인과실(책임) 부분을 빼는 단순계산방식이 관행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 안팎에선 주요 보험사들의 '담합압력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연간 4천여 건의 교통사고 관련 소송에서 기본위자료가 10%만 인상되도 전체적으로는 3∼4%의 비용증가가 발생하기 때문에 법원에 '동결'을 '읍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
스스로닷컴의 한문철 변호사는 "국산차 가격이 최고 8천만원을 넘는 현실에서 위자료 상한선이 묶여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의료사고 전문 로펌 한강의 최재천 변호사도 "별도 계산해야 할 정신적 가치를 노동력이나 수입손실액과 같은 물질적 가치와 연동시키는 도식적 계산관행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