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화분에 물을 주면 .. 이재희 <외국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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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ee.lee@unilever.com
지난 식목일을 기념해 서울그린트러스트팀원들과 함께 뚝섬 시민공원에 나무를 심고 돌아오는 길에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이 준 손바닥만한 화분 하나를 무심코 받아 왔다.
하루가 지나 가냘프게 핀 자주색 꽃이 시들어 내다 버릴까 망설이다 물을 주고 팽개쳐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신기하게도 꽃대가 선명하게 새로 피어 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면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나는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너무 무심한 나를 발견하고 '아뿔사'하고 탄식했다.
환경운동을 한답시고 환경재단, 만분클럽, 136인환경클럽, 서울그린트러스트,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경영포럼 등 내로라하는 모임에서 환경을 지키는 게 잘 먹고 잘 사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는데, 정작 화분에 물 주는 것도 잊고 살았으니….
언제부터 이렇게 메말라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전문가인 양 자랑하며 알량한 지식을 앞세울 때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의 일들을 잊고 있었던 게 아닌지 부끄러움이 앞선다.
내 회사의 일은 또 어떤지 걱정이 된다.
회장이랍시고 소비자가 어떻고 이런 어려울 때는 정책이 이렇게 돼야 한다는 등 윽박지르고 자기의 주장에 도취돼 평범한 일상에 무심하지 않았나 한번 생각해본다.
일전에 회사 일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다고 나무라며 '무정한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간부들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회사의 인트라넷에 올렸는데, 그 글을 읽은 간부들이 얼마나 서운해 했을지, 또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도와주려 했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어쩌면 무정한 사람은 정작 나 자신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늘 생각해온 '위대한 직장 만들기(Journey to great Place to Work)'는 이렇게 작은 일에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평상심으로 실천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잊고 지낸 작은 일부터 함께 만들어 가자.
화분에 물을 주면 꽃이 피듯이 작은 감동이 우리를 다시 풍요롭게 할지 모른다.
우리 그렇게 다시 출발하자.
/유니레버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