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광품 나도 가족도 없다"..한승원 '잠수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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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화두로 글을 써온 중진 작가 한승원씨(65)가 오랜만에 소설집 '잠수거미'(문이당)를 내놨다.
소설집은 지난 96년부터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는 작가가 관찰자 시점으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잠수거미'에 나타나는 한승원의 문학적 메시지는 '본질적 삶으로의 회귀'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속의 단편들은 가족간 갈등부터 농·어촌이 당면한 경제적 궁핍의 문제까지 다양한 소재로 이뤄져 있다.
때때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잠재돼 있는 인간의 욕망과 악마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수방청의 소'라는 작품에서 아들은 주식 투자로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소를 팔자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소설 속에서 아들은 일확천금에 눈이 먼 패륜아의 전형으로 묘사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이 불효,이것은 내 죄가 아니며 이 땅,이 나라 경제와 정치의 죄"라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광풍에 오염된 한 중년의 초라한 모습이 연상된다.
'저 길로 가면 율산이지라우?'는 아들의 패륜이 자행되는 작품이다.
아버지 몰래 소를 팔아넘기고 도망간 아들을 신고하기 위해 아버지는 파출소로 향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고발하지 못한다.
패륜아를 포용하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고된 삶의 역정과 그 역정을 생의 의지로 감수하는 모습이 중첩돼 있다.
여기에는 어떻게든 아들의 삶이 원만하게 풀리길 바라는 아버지의 깊은 정도 투영돼 있다.
아마도 아버지의 애정은 그 자신과 세계를 겸허하게 되돌아보려는 작가의 애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