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日 이라크 딜레마

12일 도쿄시내 외무성에선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회담이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라크 팔루자에서 8일(일본 현지시간) 발생한 일본인 3명의 인질 사건이 닷새가 지나도 해결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미 부통령의 방일은 인질사건 이전부터 예정됐던 일이지만,일본측은 회담을 앞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일본측은 회담에 앞서 공동 발표문의 표현 강도를 낮춰줄 것을 미국측에 요구했다는 게 현지언론의 전언이다. 인질사건을 일으킨 무장단체는 의도한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연합군에 저항하는 모습을 각국에 알려,미군의 팔루자 진압작전을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다.또 인질가족과 NGO등을 동원해 반미 분위기를 조성,미국과 동맹국간 분열을 꾀하려는 기도도 먹혀들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인질 석방조건으로 자위대 철수를 요구하는 무장단체 요구와 강력한 동맹확인을 요청하는 미국의 관계 때문에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 알자지라방송을 통해 인질들의 초췌한 모습이 연일 방영되자,일본내 여론은 들끓고 있다. 석방시한이 지나도 인질이 풀려나지 않자 인질 가족과 시민단체들은 공공연히 자위대 철수를 주장하는 등 반정부 움직임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도쿄시내에선 자위대 철수를 요구하는 가두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식자층에서는 "일본이 인도적 차원에서 자위대를 파견했다고 주장해도,미국과의 동맹을 위한 군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라크인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에 대해 무력진압 중지를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해야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국정 책임자인 총리가 리더로서 지도력을 발휘하라는 주문이다. 사태 초기 정부 여당과 공조를 보여온 민주당 등 야당에서도 "인질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승리,2기 집권에 성공한 고이즈미 총리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최대위기를 맞게 됐다. 그동안 외교정책에서 미국에 전폭적으로 의존해온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과의 동맹'과 '국민의 목숨'이란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라크 파병문제가 다시 총선의 쟁점이 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정부의 향후 선택이 관심거리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