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유럽 EU가입 카운트다운'] (下) 국가경쟁에서 지역경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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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는 최적의 동유럽 공장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지난 1년간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 등 4개국의 17개 산업단지를 샅샅히 조사했다.
서유럽과의 연계성,교통 및 전력 인프라,현지정부 지원,각국의 국민성과 근로자들의 생산성 등을 꼼꼼히 비교했다.
1차 조사에서 헝가리와 체코가 탈락하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두나라로 압축됐다.
"두나라 정부가 제시한 인센티브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결국 입지조건과 관련부품 산업등 인프라에서 앞선 슬로바키로 공장부지를 낙점했지만 서로 베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나라 정부의 지원조건은 똑같았어요"(기아차 김승탁 경영전략팀장)
EU(유럽연합) 사무국은 앞으로 EU 신규 가입국이 제시하는 외자유치 조건이 EU규정에 위배되지 않는지를 조사해 특혜를 제공한 경우 페널티를 물리게 된다.
내달부터 EU 신규 가입국은 부가세도 1차 상품,공산품 구분없이 모두 17%로 통일시켜야 한다.
역외 생산제품에 대한 관세는 EU규정에 따라 18%로 맞춰야 한다.
세제와 관세의 국별 차이가 없어지고 과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워져 국별 지역별 산업경쟁력이 투자유치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슬로바키아가 폴란드를 제치고 기아자동차 공장을 유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로 인프라 등 산업경쟁력에 따라 이미 동유럽 각 국의 산업지도는 지역별로 뚜렷한 명암을 그리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는 기아차를 포함,폭스바겐 푸조 등 다국적 완성차 메이커들의 투자가 집중돼 있다.
게다가 이 지역은 기계산업이 발달한 체코와 폴란드 남부를 반경 1백km 이내에 두고 있어 그에 따른 시너지효과도 기대된다.
실제로 체코에 완성차 공장을 건설 중인 도요타는 이 지역에서 자동차 엔진공장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 서부지역은 앞서 시장을 개방한 헝가리 못지 않게 인건비 상승에 따른 기술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반면 슬로바키아 동부지역은 열악한 도로망과 산업 인프라의 부재로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실업률이 25%에 육박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슬로바키아는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이미 포화 상태인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으로 돌리기 위해 인센티브를 차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폴란드에는 전자 관련 사업이 집중돼 있다.
연간 TV생산대수만 9백만대에 육박한다.
한국업체 중에선 삼성전자만 헝가리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을 뿐 LG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 등은 이 곳으로 공장을 옮겼다.
필립스 톰슨 등 유럽 TV메이커들도 앞다퉈 폴란드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신설하고 있다.
전자업체의 폴란드 집중에 자극받은 헝가리는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20km 거리에 있는 서유럽 연결고속도로망 근접지역에 중부유럽의 '실리콘 밸리'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이테크 파크 및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와 교육부의 협력 하에 국가혁신센터(NIC),이공계 대학 캠퍼스를 대거 입주시켜 첨단 IT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종욱 체코 프라하 무역관장은 "내달부터 EU편입과 함께 무관세 동맹체제로 들어가면서 통관에 걸리는 시간도 30분 미만으로 대폭 단축된다"며 "굳이 부품과 완제품을 한 국가에서 생산할 필요가 없게 돼 지역간 경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프라하(체코)=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