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 글로벌 경영전략 표류] 크라이슬러.미쓰비시차 인수로 되레 타격

세계 빅5 자동차메이커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글로벌 경영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크라이슬러 인수합병(1999년)과 미쓰비시자동차 경영권 인수(2000년)를 주도했던 위르겐 슈렘프 회장(60)의 입지도 크게 흔들려 투자자들의 퇴진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25일(현지 시간)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오는 29일 미국 뉴욕에서 경영감독위원회를 열고 슈렘프 회장의 거취와 아시아 전략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임러가 지난 22일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본 미쓰비시차에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슈렘프 회장이 추진해온 '세계 전략'의 궤도 수정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슈렘프 회장의 판단 미스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차를 인수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겠다던 다임러의 전략이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슈렘프 회장의 '판단 미스'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무엇보다 럭셔리하고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다임러와 대중적 이미지가 강한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이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슈렘프 회장은 고급차 생산 노하우와 미니밴 및 스포츠레저차량(SUV)에서 각각 우위를 보이고 있는 다임러와 크라이슬러가 협력하면 경쟁력있는 라인업을 갖출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양사는 신차 개발의 뼈대 역할을 하는 플랫폼을 공유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정도로 기술 교류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수당시 1%대에 불과했던 크라이슬러의 유럽시장 점유율도 여전히 정체 상태다. ◆장점을 망각한 다임러 전문가들은 기술뿐 아니라 마케팅 측면에서도 다임러가 국경을 넘는 글로벌 제휴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쓴소리를 한다. '벤츠'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앞세워 고급차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해온 다임러가 대중차 마케팅에서 취약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크라이슬러가 치열한 리베이트 경쟁을 벌여야 하는 미국 시장에서 밀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미쓰비시차 인수도 애초부터 실패가 예견됐었다. 미쓰비시차 자체가 해외는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아시아 전략을 펴기에는 너무도 걸맞지 않는 상대를 잡은 셈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손실 다임러의 글로벌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차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크라이슬러가 지난해 6억2천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미쓰비시자동차마저 6억9천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같이 글로벌 전략이 표류하면서 다임러의 주가는 다임러벤츠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을 당시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임러는 계열사의 독일 고속도로 통행료 자동징수 시스템 설치 일정 위반으로 거액(1천억유로)의 위약금을 예비비로 쌓아야 하는 등 어려움에 빠져 있다. 슈렘프 회장은 실적 부진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과 과도한 보수로 인한 윤리 문제 등으로 올초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최악의 CEO(최고경영자)'로 뽑히기도 했다. 자동차 전문가는 물론 다임러 투자자들은 글로벌 제휴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세심한 액션 플랜을 마련하지 못해 다임러가 궁지에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