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차폭발 대참사] 2002년 7ㆍ1 경제개혁조치 이후 北 경제는

북한은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경제의 부분적 도입과 대외경제개방에 나서고 있다. 이 조치에 따라 공장가동률이 다소 올라가고 생산량이 늘었다. 실업률도 개선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영시장 및 농민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양도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 반면 극심한 인플레와 물가앙등,빈부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도 적잖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가장 불평하는 것은 식량가격의 급등이다. 북한당국이 제시한 쌀 1㎏당 가격은 7ㆍ1조치 이전인 2002년 2월 40∼50원(공식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북한 돈 1원은 한국 돈 7원 상당)에서 같은해 8월 80∼90원으로 올랐다. 북한이 2차 북핵사태를 야기해 국제원조가 줄어든 시점인 같은해 12월에는 1백50원으로 상승했다. 물론 북한의 임금도 동반상승했다. 북한은 7ㆍ1 조치를 통해 기존 임금을 18배 인상하고 1인당 월2천원 정도의 임금을 책정했다. 탄광 노동자의 경우는 20∼25배 올렸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에는 쌀 가격이 ㎏당 2백원까지 올랐다"며 "부부가 맞벌이할 경우 월4천원을 벌 수 있지만 직장에서 꼬박꼬박 임금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삶의 질은 더 열악해졌다"고 말했다. 탈북자들도 "지난 한햇동안 인플레가 6백%에 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난도 심각한 실정이다. 2002년 11월 북한이 제2차 북핵사태를 유발하자 미국은 연간 50만t의 중유공급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북한 전체 발전량의 15%가 줄었다. 노후된 배전 송전시설 또한 전력손실을 초래하는 주범의 하나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식량난 에너지난 외환부족 등 북한의 3대 고질적 '병폐'는 산업시설 가동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그러나 7ㆍ1 조치는 이같은 문제점의 일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경제개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동 팀장은 전망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 [ 북한 경제개방 일지 ] 1958년 소련식 사회주의 생산관계 구축선언 1971년 1차 6개년 경제계획 수립 1970년대 공업근대화 및 대외개방을 시도했으나 소련과 중국의 원조단절과 서방국 외면으로 좌절 1976년 외채 25억달러 누적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1984년 합영법 공포 통해 기술도입 대외경제협력 시도 1991년 나진 선봉 지역을 경제특구로 선포 1994년 미국 대북 경제제재조치 1995년 2월 미국 대북제재조치 1차 완화 2000년 6월 미국 대북제재조치 2차 완화 2001년 1월 김정일 중국 상하이 경제특구 방문 2002년 9월 신의주 특별행정구 선포 2002년 7월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 2002년 10월 금강산 관광지구 선포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 지정 2004년 4월 개성공업지구 공사 착공 [ 7ㆍ1 조치 ] 2001년 중국 상하이를 둘러보고 충격을 받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회주의 경제에 시장원리를 일부 도입, 가격현실화와 생산성 제고를 노린 것이다. 임금인상 및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식량배급제를 부분적으로 폐지했다. 생산자가 잉여생산물 일부를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